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운용위)가 26일 의결할 예정이던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 안건을 오는 30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재계가 반발해온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활동 내용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에서 빠진 것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반발하자 기금운용위가 합의점을 도출할 시간을 좀 더 갖기로 한 것이다.
◇ 시민단체 "국민연금 경영참여 당장 선언해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2018년 제5차 기금운용위 회의를 열고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을 의결할 예정이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오는 30일 제6차 회의를 열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재계 추천 위원은 "시민단체에서 오신 분들이 지금의 도입안은 강도가 너무 약하다며 국민연금의 경영참여를 과감하게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정부가 재계의 우려를 감안해 당초 검토했던 이사 선임·해임, 감사 추천, 정관변경 제안, 주총 소집 요구 등 강도 높은 경영참여 내용을 도입안에서 뺀 것을 두고 시민단체쪽에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근로자 대표인 정광호 한국노총 사무처장과 유재길 민주노총 부위원장, 참여연대 추천으로 기금운용위에 합류한 이찬진 제일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등이 이같은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오늘은 일단 도입안대로 의결하고, 경영권 참여에 대해서는 차차 논의해 나가자"고 제안했으나 위원들간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정부가 마련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에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 주주대표소송 시행 근거를 마련하고 합리적인 배당정책을 요구하는 기업 수를 지금의 2배 수준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오너·경영진의 사익편취와 배임·횡령,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가 드러난 회사를 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하고 이들에 대한 주주활동을 강화하는 내용,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방향을 사전공시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에 관한 최고의사결정기구다.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정부·재계·근로자·연구기관 등 각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 예고된 경영참여…불안한 재계
재계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가 시민단체의 반발을 의식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에 '연금 사회주의' 논란을 낳는 경영참여 내용을 다시 넣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날 박 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경영참여에 해당하는 주주활동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와 논의해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법령 개정 등 제반 여건이 구비되면 경영간섭이 아닌 경영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말했다.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측 대표자들은 정부의 이런 방침에 대해 "뒤로 미루지 말고 이번 기회에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권 참여를 선언하자"고 요구했다. 재계측 대표자들은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은 회의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우선은 경영참여를 배제하고 나중에 여건이 구비되면 (경영참여를) 추진하자는 의견과 시작부터 경영참여를 선언하고 법률 등 세부적인 문제는 사안별로 조정해 나가자는 의견이 충돌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참여가 경영간섭으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며 "기금운용의 첫 번째 원칙인 수익성 보장을 위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벌개혁·적폐청산을 구호로 내건 현 정부가 독립성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국민연금을 기업 협박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며 "정부에 귀속된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