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이 약해졌다."
지난 24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전 한국중소기업학회장)는 중소·중견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회사를 이끄는 오너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내 중소·중견 기업 대부분이 (정부에게) 규제는 풀어달라고 하고 성장하는 방법은 고민하지 않는다"며 "오너가 초심으로 돌아가 도전하는 자세로 기업의 혁신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중소·중견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는 풀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정부의 지원과 규제 완화만을 바라보고 있어 기업이 스스로 성장하는 힘을 잃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오너의 솔선수범도 강조했다. 그는 "오너가 먼저 나서야 한다. 가장 열심히 일하고 조직 내 본 받을 만한 대상이 돼야 한다"면서 "그래야 직원들이 믿고 따른다. 오너 자신은 수입차를 타면서 골프를 치러 다니기 바쁜데, 직원들에게는 돈을 적게 주면서 열심히 일하라고 하면 그들이 열심히 일하겠는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중소 기업만의 인재 영입, 보상 시스템 만들어야
이 교수는 중소·중견 기업이 혁신 성장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인재 영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혁신은 돈이 아닌 사람에서 나온다. 이 교수는 "중소·중견 기업이 대기업과 상황이 다른 만큼 대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재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재를 영입할 때 금전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면 대기업에 좋은 인재를 뺏길 수밖에 없다. 중소·중견 기업의 직원 연봉은 대기업에 비해 20~50% 적다.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대기업과는 다른 부분을 강조하면서 인재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가 제시한 해결 방안은 '일하고 싶은 공간'이다.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금전적인 보상을 못 한다면 비금전적인 측면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우선 오너가 직원들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 그는 "직원들을 존중하고 그들과 함께 회사를 만들어 나가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래야 직원들이 충성심을 갖고 일하고 성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 다음 오너가 꼭 지켜야 할 부분은 금전적인 보상이다. 함께 성과를 낸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야 그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또 다른 인재가 모인다는 얘기다. 국내 중소·중견 기업이 이런 인재 영입과 보상 시스템을 만들어야 지속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이 교수는 중소·중견 기업의 대기업 의존도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중견 기업은 국내 대기업이라는 안정적인 수요처를 만들었고, 제품 공급량을 늘리면서 성장했다. 하지만 이는 중소·중견 기업에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대기업이 잘 나갈 때는 문제가 없지만, 대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 그 여파가 고스란히 중소·중견 기업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자동차, 중공업, 철강 부문 대기업의 실적이 악화되자 협력 업체인 중소·중견 기업의 물량이 줄고 수익률이 떨어지는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제는 중소·중견 기업이 해외 시장으로 나가 새로운 수요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소·중견 기업이 독자적으로 해외 시장을 뚫기란 쉽지 않다. 이 교수는 중소·중견 기업이 서로 협력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매출 규모가 10억~30억원 정도 하는 기업이 글로벌 기업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해외 네트워크도 없고, 물량도 부족하고, 협상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개별적으로 글로벌 기업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뭉쳐서 상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 네트워크를 지닌 기업,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 해외 생산 기지를 구축한 기업 등 각각의 장점을 하나로 합쳐 글로벌 기업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관련, 두 가지 시나리오 전망
이 교수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 두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했다. 첫 번째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임금이 오르는데도 노동 수요가 떨어지지 않으려면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경제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한국은행과 정부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3.0%에서 2.9%로 하향 조정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서 임금은 올랐는데 실적이 악화되면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인력 조정이다"며 "한국 경제가 일자리는 줄고, 기업은 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진퇴양난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업종 또는 규모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등 중소·중견 기업이 받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긍정적인 전망이다. 기업은 충격이 와야 변신하고 성장한다. 임금인상이란 비용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중소·중견 기업이 다양한 기술을 도입하려고 나선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국내 중소·중견 기업이 스마트공장,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 시대를 대표하는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 내 적용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려고 할 것"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이란 위기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