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CATL은 이번달 독일 동부 에르푸르트에 2억4000만유로(3160억원)를 투자, 유럽 첫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에르푸르트 공장은 오는 2022년까지 생산능력을 14GWh로 늘릴 예정이다. CATL의 결정은 리커창 중국 총리의 독일 방문 중 발표됐다.

독일 자동차 회사 BMW는 CATL의 투자에 대한 화답으로 40억유로(5조2700억원) 상당의 배터리를 CATL로부터 구매할 것이라고 했다. BMW는 CATL의 지분 4억2600만달러(전체 주식의 1.6% 규모)를 투자할 수 있는 권리도 획득했다. 한국 삼성SDI(006400)의 배터리를 써왔던 BMW가 CATL과의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LG화학(051910), 삼성SDI, CATL, BYD, 파나소닉 등 한국·중국·일본 회사들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공격적으로 생산능력을 확대, 2~3년 내 배터리 ‘치킨게임’의 승자가 되겠다는 각오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왼쪽)이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에게 회사의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 한·중·일, 전기차 배터리 증설 경쟁

LG화학은 올 10월 중국 난징에 연간 50만대 분량의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2공장을 착공한다. 내년 10월부터 상업생산을 시작하며, 2023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연간 생산능력을 32GWh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은 지난해 기준 18GWh 수준으로 한국, 중국, 미국, 폴란드에 공장을 두고 있다.

NH투자증권은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은 올해 28GWh, 2020년 70GWh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며 “(중국 증설은) 고속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을 고려한 공격적 투자”라고 분석했다. 하나금융투자는 오는 2020년 삼성SDI의 중대형 전지 생산능력이 30GWh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SDI는 한국, 중국, 헝가리에 공장을 갖고 있는데, 전기차 시장 수요에 따라 공격적인 증설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기업들도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 증가와 함께 증설에 적극 나서고 있다. CATL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이 2016년 8GWh에 불과했으나 현재 23GWh 수준까지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020년에는 생산규모를 두배 수준인 50GWh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BYD는 올 6월 중국 서부 칭하이에 축구장 140개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세웠다. 내년까지 생산능력을 24GWh 규모로 확대한다. BYD는 “칭하이 공장을 통해 오는 2020년까지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60GWh까지 높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 테슬라와 협력하고 있는 파나소닉은 일본, 중국, 미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1000억엔(약 1조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기준 파나소닉의 생산능력은 8.6GWh 규모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는 “중국계 배터리 회사들은 올 들어 중국 전기버스·트럭 판매 성장에 힘입어 강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파나소닉도 건재하다”면서 “LG화학과 삼성SDI가 고전하고 있는 실정인데, 분발이 요구된다”고 했다.

중국 CATL은 최근 독일 공장 설립을 발표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 중국 전기차 보조금 축소…한국 기업에 기회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자 자국 기업 보호에만 치중했던 중국 현지 상황도 다소 개선되고 있다. 최근 중국 자동차공업협회가 한국 기업을 전기차 배터리 우수 제조업체 명단(화이트리스트)에 포함시켰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내년도 전기차 보조금 삭감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보다 보조금이 3분의 1이상 낮아질 수 있으며, 보조금 지급 기준도 강화(최소 1회 충전시 150km 주행에서 200km 이상 주행)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기업에만 지급되는 전기차 보조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한국 기업에게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1회 충전시 320km 이상을 주행할 수 있는 배터리를 개발했고, 글로벌 자동차 회사의 협력을 통해 5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한 배터리도 개발중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9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배터리 20개를 장착하면 1회 충전시 600~700km 주행이 가능한 기술을 선보였다.

한·중·일 배터리 회사들은 저마다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지난해 이후 배터리용 광물 가격 급등으로 수익성 확보에 고전했다. 판매량이 늘면 수익성도 개선되어야 하는데, 투자는 실컷해놓고 적자를 보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일례로 코발트 가격은 7월 현재 Kg당 71.5달러로 2016년 7월(Kg당 25.2달러)보다 2.8배 수준이다. 올 5월(Kg당 91.75달러)보다 가격이 떨어졌지만 전기차 수요 증가에 따라 가격이 반등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096770)등 국내 기업들은 코발트 함량을 10% 이하로 낮추는 배터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코발트 비중을 지나치게 낮추면 배터리 안정성에 문제가 생긴다.

SNE리서치는 “코발트, 리튬 등의 배터리 소재 가격 하락은 언제든지 반전될 가능성이 높다”며 “지금과 같은 가격 하락 상황에서 일부 물량을 추가 확보해 가격 상승 충격을 상쇄시키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