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말하기 경진대회 같았어요(웃음)."

이달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코드 도입방안 공청회'를 지켜본 개인투자자 A씨는 방청 소감을 묻는 질문에 "토론자들이 누군가에게 쫓기듯 말을 너무 빨리 해서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다들 할 말이 더 있는 듯한데 (공청회가) 순식간에 끝나 아쉽다"고도 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7월 말로 예정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에 앞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폭넓게 듣겠다며 공청회를 개최했다. 정부, 학계, 재계, 금융투자업계, 시민단체 등 각계를 대변하는 전문가 10명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좌장을 맡은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은 공청회 서두에 "좌장이 할 일은 시간 통제"라며 "토론 시간이 1시간에 불과하므로 한 사람당 발언시간을 5분으로 제한하겠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해야 하니 5분을 반드시 지켜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토론자들은 좌장의 비장한 엄포를 순순히 따르며 제한시간 안에 준비한 말을 모두 쏟아내기 위해 애썼다. A씨의 소감처럼 빨리 말하기 대회 현장을 방불케 했다. 박 원장은 그런 토론자들의 얼굴과 시계를 번갈아 쳐다보며 시간을 쟀다. 정용건 연금행동집행위원장은 랩을 하듯 5분간 쉬지 않고 말한 후 "이러다가 숨 넘어가 죽겠습니다"라고 푸념해 방청석의 웃음을 자아냈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는 5분을 넘기는 바람에 발언 도중 마이크를 빼앗겼다. 그가 한창 "국내 자본시장에 스튜어드십코드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의결권 자문기관의 역량도 함께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전 교수가 '여기까지 마무리 짓겠다'는 표시를 했으나 좌장은 단호했다. 이후 전 교수는 불쾌한듯 공청회가 끝날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날 공청회장은 방청객으로 꽉 들어찼다. 200석 규모의 방청석이 모자랐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입증했다. 그러나 주최측이 방청석에서 받은 의견은 총 4개에 불과했다. 엄격한 통제 덕분인지 공청회는 시작 두 시간 만인 오후 4시에 예정대로 끝났다. 어렵게 시간을 맞춰 모인 전문가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짐을 쌌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770여개에 이른다. 재계를 비롯한 자본시장 참여자들이 '공룡'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정부가 이번 공청회를 통해 각계 의견과 비판, 우려를 제대로 수집하려고 했다면 밤샘 끝장 토론을 열었어도 시간이 모자랐을 것이다.

요식행위나 다름없던 공청회에서 정부가 무엇을 얻었는지 묻고 싶다. 전문가들은 시간에 쫓기며 예측 가능한 말만 다급히 늘어놓고 떠났다. 갑론을박의 치열한 토론은커녕 각자 정면의 시계만 주시한 채 말이다. 정부는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안에 국민 의견이 반영됐다고 자화자찬할 자신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