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르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근로자(지난해 8월 기준 2000만6000명) 네 명 가운데 한 명의 임금을 최저임금에 맞게 올려줘야 한다. 하지만 기업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하면서 최저임금을 못 줘 법을 어기게 되는 사업주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이 6470원이었던 작년에도 전체 근로자 13.3%(266만1000명)가 최저임금 미만을 받았다.

◇근로자 넷 중 한 명 임금 올려야

최저임금위가 최근 발표한 '2019년 최저임금 심의를 위한 임금실태 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도 최저임금(8350원) 인상에 따른 영향률은 25%(약 500만5000명)로 추정됐다. 이는 최저임금 제도 도입 이후 역대 최고치다. 최저임금 영향률은 최저임금액이 적용될 때 임금이 올라가는 근로자 비율을 뜻한다. 즉 현재 시점에서 시간당 8350원보다 덜 받기 때문에, 내년에 임금을 올려줘야 할 근로자가 전체 넷 중 하나라는 것이다. 다만 이 수치는 지난 5월 최저임금 산입 범위 개편의 효과는 반영되지 않았다.

어색한 악수 - 지난 14일 새벽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 회의에서 류장수(왼쪽) 위원장과 근로자 위원인 이성경 위원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 시간당 8350원으로 결정됐다.

자영업자·소상공인 등이 몰린 영세 업종일수록 최저임금을 지키기 위해 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근로자 비율이 높다. 숙박·음식업은 내년에 근로자 62.1%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 편의점 등 도·소매업 역시 근로자 37.3%가량의 임금이 오른다. 사업장 규모별로 봐도 영세한 곳일수록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이 크다. 근로자 수가 1~4인인 사업장에서는 절반 이상(51.8%), 5~9인 사업장도 33.7%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임금 인상 대상이 4.2% 수준이다.

◇최저임금 못 주는 사업체 속출할 듯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해서 모든 근로자가 다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는 것은 아니다. 경영 사정이 어려운 사업주는 이를 감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5000~6000원대였던 2014~2017년까지 해마다 222만~267만명의 근로자가 최저임금을 못 받았다. 문제는 현 정부 출범 이후 2년 사이에 최저임금이 29.1%나 급증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범법자로 전락할 수 있는 영세 업체 사업주들이 속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대 통계를 보면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인상돼 영향률이 높을수록,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의 비율(최저임금 미만율) 역시 높아졌다. 2010년대 이후 최저임금 미만율은 최저임금 영향률보다 3~5%포인트 정도씩 낮은 패턴이 반복됐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최저임금 영향률이 역대 최고치인 내년(25%)에는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 비율이 20%(약 400만명)를 넘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은 "2018년도에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약 21%까지 오를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올해 관련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미만율은 기업의 경영 상황, 정부의 근로 감독 의지 등에도 영향을 받지만, 기본적으론 최저임금 인상률에 달려 있다"면서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른 올해와 내년에는 미만율 역시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을 못 주는 업체가 1~4인 사업장, 숙박·음식업, 편의점 등 도·소매업 등에 쏠릴 것으로 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10.9%로 올해(16.4%)보다 낮아졌지만, 올해 대폭 인상으로 이미 한계 상황에 처한 소상공인·영세 자영업자가 많다"면서 "특히 최저임금 산입 범위 조정으로도 부담을 덜기 어려운 소상공인·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심각할 것"이라고 했다. 최영기 한림대 교수는 "정치권이 최저임금을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정권마다 휘둘리는 것"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 지금의 결정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