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선 스위스 원자재 개발 및 트레이딩 업체 글렌코어의 '부패 스캔들'로 떠들썩하다. 글렌코어가 콩고 코발트·구리광산 인수합병 과정에서 콩고 정치권에 돈을 준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미국 법무부는 글렌코어에 콩고,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사업 최근 10년치 문서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부패 스캔들이 첫 보도된 이달 2일 8.1% 급락한 것을 시작으로 주가는 연일 내리막길이다. 매도 주체는 글로벌 연기금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연기금은 점점 더 사회책임투자(SRI)에 주력하고 있다. 착한 기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는 의미다. 자산 1100조원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술이나 도박, 무기 제조업체나 사회적 논란이 되는 기업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다른 연기금들도 동조하는 추세다.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은 "SRI는 장기적으로 기업이 경쟁력을 갖는데 도움을 준다. 이 때문에 연기금이나 장기투자펀드는 ESG지수를 자산 배분 및 벤치마크지수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밝히고 있다. ESG는 SRI의 근간이 되는 지수다.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를 고려해 편입 기업을 선정한다.
그런데 글로벌 SRI펀드가 한국 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투자 대상 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MSCI 정기변경 때 MSCI 코리아 ESG 리더스지수는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 등 현대차그룹주, 현대중공업지주, 셀트리온, 롯데쇼핑, 금호석화, 제일기획, 한샘 등을 편입 대상에서 제외했다. MSCI ESG 유니버셜지수는 대한항공을 뺐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비중이 30%에 육박하는 삼성전자도 연초에 편출됐다. 아직 남아 있는 기업 중에도 퇴출 가능성이 엿보이는 기업이 있다. 채용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금융주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자체적으로 ESG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인기가 없어 한국거래소는 연말까지 새로운 ESG지수를 개발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SRI 비중을 높이겠다고 한 데 대해 거래소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자산운용사들도 잇따라 SRI펀드나 SRI 상장지수펀드(ETF)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지수만 그럴듯하게 만든다고 시장이 형성될까. SRI시장을 살리려면 무엇보다 기업의 경영 문화가 개선돼야 하는데,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오너 갑질 뉴스를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MSCI ESG지수에서 대기업들이 잇따라 퇴출당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자체 개발한 지수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 기업의 낙후된 경영 문화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