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에서 1개월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경찰서도 다녀왔고, 검찰에 (사건이) 접수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매달 무사히 넘기기만 바라는 나같은 서민에게 처벌은 죽으라는 말처럼 느껴진다.”

지난달 21일 국무조정실이 운영하는 규제정보포털에 '외국인 도시민박업을 내국인 대상으로 가능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민원이 올라왔다. 이 민원인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도시민박업을 하다가 단속에 걸렸다. 그는 "(민박업으로) 등록 안 하고 영업하는 사람도 있는데 걸린 나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정부가 규제를 풀어준다고 했는데, 얼마나 진척이 되고 있는지 답답하다. 하루하루가 고비"라고 했다.

현행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내국인을 대상으로 도시민박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현재 에어비앤비와 같이 일반 주택을 이용한 민박 제공은 외국인 대상으로만 가능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작년 12월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한 제1차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올해부터 내‧외국인 모두 받을 수 있는 공유민박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공유민박업 도입 법안은 현재 3건이나 발의돼 있다. 그러나 관련 법안은 아직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특히 이학재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발의된 지 2년 가까이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완영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관광진흥법' 개정안도 작년 7월 발의된 것으로 1년이 다 되어간다.

국회의사당

소관 부처인 문화관광체육부 관광산업정책과는 공유민박업 도입이 늦어지는 것과 관련해 "설명회, 관련 회의, 의견 수렴 등 공유민박업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법안 통과 여부는 국회 고유 권한"이라고 했다.

국회가 공유민박업 도입 법안을 처리하지 않으면서 무허가 불법 민박업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문체부는 현재 불법인 공유민박업을 제도화해 각종 부작용을 막으려고 하지만,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현장은 매일 고비를 넘기고 있는데, 국회나 정부는 현행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바로잡는데 수년씩 시간만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환경에서 에어비앤비와 경쟁할 수 있는 국내 토종 공유경제 업체가 성장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불법 민박으로 인한 부작용도 문제지만, 규제 혁신이 미뤄지는 사이 국내 공유경제가 고사(枯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혁신 성장과 규제 혁신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지난 3월 낸 '규제혁신 1+4법 제‧개정안'도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이다. 규제혁신 1+4법은 행정규제기본법을 포함해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제정, 산업용합촉진법 개정, 정보통신융합법 개정, 지역특구법 개정 등이다.

조선일보DB

국내 숙박공유업체 위홈(코자자)의 조산구 대표는 “규제를 철폐하자고 지난 6~7년 동안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를 해도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며 “국내 기업들이 내부 시장에 특화해서 성장하고 싶어도 규제 때문에 할 수 없다. 구조적으로 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사업자에 유리한 시장 환경이 방치돼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위홈을 포함해 국내 대표 스타트업(초기벤처기업) 대부분은 현재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카풀 스타트업인 풀러스는 네이버, 미래에셋, SK그룹 등으로부터 220억원을 투자 받고 1년 만에 회원 75만명을 모집하면서 한 때 '한국판 우버'로 불렸다. 하지만 작년 서울시가 현행법 여객자동차운수사업 위반을 이유로 경찰 조사를 의뢰하면서 위기를 맞았고, 결국 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직원 70%가 해고됐다.

이처럼 공유 숙박 뿐 아니라 공유 차량 서비스, 드론, 바이오, 자율주행차 등 주요 혁신 사업마다 성장을 가로 막는 규제가 자리 잡고 있다. 국내 혁신 스타트업들은 사업 규모를 축소하거나 한국 대신 미국‧중국 등 해외로 진출해 사업을 하고 있다. 위홈도 국내 규제 철폐를 기다리다 못해 해외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공유경제가 맥을 못 추고 있는 반면 미국, 중국, 일본 등 경쟁국가에서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만 해도 중국 디디추싱, 싱가포르 그랩 등은 미국 우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공유 대상도 차량에 그치지 않고 비행기, 오토바이, 자전거 등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가 2018년 3월 기준으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설립 10년 이내 기업이면서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유니콘 기업 중 236개 업체 중 한국 기업은 쿠팡, 옐로모바일, L&P코스메틱 등 3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업의 인식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단일산업을 전제로 한 칸막이 규제와 행정이 산업융합을 가로막고 있을 뿐 아니라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사전규제를 철폐하고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동시에 사후 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박용만(오른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6월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규제개혁 절차 개선방안에 대해 건의했다.

경제 단체들도 규제 철폐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달 15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규제 개혁 프로세스 개선 방안을 건의했다. 그는 “지금까지 38번, 40번에 가깝게 (규제개혁) 과제를 말씀드렸는데, 상당수가 그대로 남아 있어 기업들은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과제 발굴보다 해결 방안에 좀 더 집중할 때”라고 호소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지난달 15일 기획재정부에 ‘혁신성장 규제 개혁 과제’를 건의하며 “규제 개혁이 잃어버린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며 “이해당사자 간 갈등으로 추진이 지연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서는 등 적합한 규제 개혁 프로세스를 활용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규제 혁신은 기업들이나 경제단체 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도 강조하는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29일 국무회의에서 “국제 경쟁에서도 경쟁국들은 뛰어가는데, 우리는 걸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혁신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혁신도 더 속도를 냈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달 27일엔 규제혁신점검회의를 3시간 앞두고 준비 부족을 이유로 전격 취소했다. 문 대통령은 “답답하다. 속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규제 혁신은 구호에 불과하다. 우선 허용하고 사후에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추진하는 것에도 더욱 속도를 내달라”고 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규제혁신을 주문하는데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는 일선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과거 정부에서 정책을 만들었거나 요직에 있었던 공무원들이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징계받거나 밀려나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같은 처지가 될까 걱정하는 공무원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규제는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쪽이 좋아지면 다른 한쪽이 불리해질 수 있다.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고 나서지 않으면 아무리 대통령이 규제 혁신을 강조해도 시늉을 내는데만 그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