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콩(연료) 값이 올라 갈 때 그만큼 두부(전기) 값을 올리지 않았더니 두부 값이 콩 값보다 더 싸졌다."
올 4월 취임한 김종갑 한국전력(015760)사장은 이달 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제기했다. "(두부 값이 싸서) 소비가 대폭 늘어나고, 소비왜곡이 다른 나라에는 거의 볼 수 없는 사례"라는 김 사장의 지적은 언뜻 보기엔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김 사장의 논리는 역대 한전 사장들의 발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한전 사장들은 실적이 나쁠 때나 좋을 때나 한결 같이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너무 싸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더 많이 올리겠다", "전기요금은 연료비 가격 변동을 반영해야 한다"와 같은 발언을 반복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처럼 전기요금 인상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한전이 자체적으로 원가절감을 한다고는 하나 실적을 개선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이라며 "실적이 좋을 때는 내리지 않으면서 요금탓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 10년 전에도 콩·두부값 근거로 전기요금 인상론 꺼내
LG전자(066570)최고경영자(CEO) 출신인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은 지난 2008년 취임 직후 "콩 값이 올라가면 두부 값도 오르는 것이다. 가스와 유가가 50~100% 올랐는데 전기요금은 동결돼 심각한 상황"이라며 "전기요금은 선진국처럼 연료비 가격 변동을 반영해 조정하는 연동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김 전 사장은 3년의 임기를 채우고 2011년 한전을 떠날 때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주들로부터 2조80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면서 사임을 결심했다"면서 "한번도 경찰서 문턱에 가본 적이 없는데 3년간 열심히 일하고 피소에 이르렀다. 주주들이 제소한 이상 식물사장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자리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후임 사장이 정해지기도 전에 사표를 냈다.
현대건설(000720)CEO 출신인 김중겸 전 한전 사장은 지난 2012년 7월 "전기요금을 정부가 제시한 5% 정도만 올리면 2조원의 적자가 발생한다"며 "주택용보다 산업용, 특히 대기업들이 사용하는 전기요금을 더 많이 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한전은 2012년 상반기에 4조3500억원대 영업적자를 냈는데, 무려 16.8%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정부에 제출했다가 반려당했다. 김 전 사장은 전기요금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취임 후 1년 2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한전을 떠났다.
◇ 실적 좋을땐 투자 핑계로 전기요금 못 내려
한준호 전 한전 사장(현 삼천리 회장)은 2006년 7월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너무 싸서 전기절약이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면서 에너지 과소비를 지적했다. 그는 "전력 생산원가의 60%가 연료비인데 연간 수조원의 투자비를 감안할 때 추가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2015년 11조원대 영업이익을 거뒀다. 그러자 폭리 논란이 생겼고 전기요금을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조환익 전 사장은 2016년 3월 "전기요금 인하는 교각살우(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라며 "전기요금이 1~2% 내려간다고 해서 그게 국민효용 가치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한전처럼 한해 6조4000억원이나 투자하는 곳이 어디 있느냐"며 방어했다. 조 전 사장 재임 시절 한전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으로 연 평균 11.6%의 요금 인하를 겪었지만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에너지업계에서는 김종갑 현 사장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제기했고, 올 들어 원전(원자력 발전소)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진 만큼 인상론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전기가 소비자의 가격저항이 큰 생필품이라는 점에서 인상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황일순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들은 전기료가 싼 곳을 찾아 가는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면 전기료가 올라갈 수 밖에 없다"면서 "우리나라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는 (기업 유치를 위해) 전기료를 낮추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