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인선 과정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개입한 것은 형법상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법(30조)상 기금운용본부장 임면(任免)권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있는데 청와대가 관여한 것은 부당한 인사 개입이라는 것이다.

이 사안과 관련해 청와대가 인정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장 실장이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기금운용본부장에 지원해보라"고 했다는 것과 곽 전 대표 탈락 배경과 관련해 "검증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한 부분이다. 곽 전 대표는 장 실장 전화를 사실상 내정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기금운용본부장 공모에 지원했지만 중도 탈락했다.

장 실장이 곽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건 것은 지난 1월 30일, 기금운용본부장 모집 공고가 국민연금 홈페이지에 나온 것은 2월 19일이다. 사실상 공모 전에 청와대가 곽 전 대표를 후보로 점찍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민연금법에는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의 경우 이사추천위원회에서 후보들을 선별하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그중 한 명을 복지부 장관에게 추천하고 장관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어디에도 청와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한 변호사는 "청와대가 개입을 시도한 것 자체만으로 직권남용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통해 공기업인 KT에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지인의 인사를 청탁한 것을 직권남용죄로 기소했고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적용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문체부 공무원을 사직하게 한 것도 유죄 판단을 받았다. 과거 통치 행위로 인정하던 것에 직권남용이라는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상당수 법조계 인사는 이번 사안도 그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