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배터리가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으로 떠오른 자국 시장을 발판 삼아 글로벌 1위로 뛰어올랐다. 기술은 일본이나 한국 업체보다 뒤지지만,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8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올해 1~5월 전 세계 전기차에 탑재된 출하량을 집계한 결과, 1위는 중국 CATL로 4311메가와트시(MWh)였다. 근소한 차이지만 2위 일본 파나소닉(4302MWh)을 제치고 처음으로 출하량 기준 세계 1위로 올라섰다. 3위는 또 다른 중국 업체 비야디(BYD)로 2424MWh였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가 자국 시장에서 출하량을 크게 늘리며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중국 배터리 업체 비야디(BYD)의 선전(深玔) 본사에서 전기차에 대한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CATL의 출하량은 1위 파나소닉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불과 1년 만에 출하량이 4배 이상으로 늘며 순위를 뒤집은 것이다.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 8.1%에서 올해 18.5%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BYD의 출하량도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출하량 기준 글로벌 '톱 10' 가운데 절반이 중국 업체였다.

◇급성장하는 중국 시장 독차지

중국 배터리 업체의 굴기는 올해 전기 버스와 트럭 등 상용차 판매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전기차가 많이 팔릴수록 여기에 들어간 배터리 출하량도 늘어난다. 중국 정부는 2019년부터 전체 자동차 생산량의 10% 이상을 전기차 같은 신에너지차(NEV)로 채우도록 강제하는 등 강력한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이미 전 세계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생기는 과실은 중국 업체가 독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6년 12월부터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엔 보조금을 주지 않고 있다. 중국 업체는 전기차 가격의 최대 절반까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보조금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차량을 팔 수 없다. 자동차 메이커 입장에선 보조금을 받기 쉬운 중국산 배터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배터리 업계에선 "내수 시장 장악을 통해 중국 업체가 성장하도록 중국 정부가 보호막을 쳐 주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SNE리서치는 "지금 추세라면 CATL이 파나소닉과의 격차를 벌리며 올해 전체 출하량에서도 1위를 차지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전망했다.

◇한국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부진

중국 업체들이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출하량이 크게 늘어난 반면, 한국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모습이다. 지난해 1~5월 파나소닉에 이어 출하량 2위였던 LG화학은 올해 CATL과 BYD에 밀려 4위로 밀려났다. LG화학 출하량이 36%나 늘었지만 중국 업체의 성장률이 워낙 높았다. 지난해 출하량 5위였던 삼성SDI도 5위에서 6위로 순위가 내려갔다.

CATL은 최근 독일 자동차 업체 BMW그룹과 10억유로(1조3100억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BMW는 삼성SDI가 10년가량 전기차 배터리를 독점 공급하던 주요 고객사인데, 이 구도를 깨뜨린 것이다. CATL은 독일 에르푸르트에 배터리 공장도 지을 예정이다. 업계에선 이 공장이 자동차 본고장인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전진 기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LG화학, "CATL이 가장 위협적인 경쟁사"

중국 업체들의 급부상에 대한 국내 업계의 해석은 엇갈린다. 출하량이 급격하게 늘고 있지만, 대부분 중국 내수 수요이고, 기술 수준이 아직 한국 업체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공급 계약은 수년 뒤에 나올 모델에 대해서도 이뤄진다"며 "지금 당장의 생산량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자동차 메이커에 얼마나 많이 공급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주 잔량과 기술에서 크게 앞서는 국내 업체를 따라오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명환 LG화학 사장은 지난 5월 한 포럼에서 "CATL이 아직 실력은 없지만 빠르게 성공하고 있다"며 "삼성SDI나 테슬라에 묶여 있는 일본 파나소닉보다 훨씬 위협적인 경쟁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 기술이 우리보다 3~4년 정도 뒤처져 있지만 그 간격이 빠른 속도로 좁혀지는 데다, 중국 제품은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다"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2~3년 안에 크게 문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