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줄기차게 규제를 가해도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 기회를 노리는 여유 자금이 많긴 많다."
지난 2일 임차인을 모집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 한남'의 청약 결과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다. 임대보증금이 최소 33억원, 최고 48억원에 달하는 고급 임대주택에 1800여명이 신청해 평균 5.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청약 신청자들의 가용 자금이 40억원이라고 가정하면 7조원이 넘는 시중 자금이 한꺼번에 몰린 셈이다.
양도세 중과(重課), 종합부동산세 개편 등 다주택자 등 고액 자산가를 겨냥한 정부의 규제 강화에도 부동산 시장에 잠재 수요가 풍부하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 안정을 명분으로 한 정부의 가격 통제가 '로또 아파트'라는 엉뚱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나인원 한남에 몰린 청약 수요도 최근 서울과 수도권에 공급된 로또 아파트와 비슷한 기대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올 상반기까지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중상위층들의 로또 아파트가 공급됐다면, 나인원 한남은 최상위 자산가들을 위한 로또 아파트"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최소 33억원 임대주택 '부자들의 로또'
나인원 한남은 애초 3.3㎡당 6000만원대 초반에 분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분양가가 지나치게 비싸다"는 이유로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분양보증을 거부하면서 민간임대주택으로 공급 방식을 바꿨다. 임대 기간인 4년간 보증금은 33억~48억원. 시행사인 디에스한남은 "당첨자들에게 4년 뒤 분양 전환 우선권을 주고, 분양가는 준공 시점(2019년 11월 예정)의 평가 가격 이하로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주변 시세만큼만 올라도 당첨자들이 최소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의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예상이다.
부동산업계는 나인원 한남의 분양 전환 가격을 전용면적 244㎡의 경우 49억~53억원 정도로 추산한다. 같은 한남동에서 분양 후 임대 방식으로 공급된 '한남더힐' 전용 244㎡는 올해 1월 74억원에 거래됐다. 나인원 한남의 예상 분양가보다 20억원 정도 비싼 가격이다. 서울 강남의 신축 아파트는 중소형 주택도 3.3㎡당 시세가 8000만원까지 치솟았다.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는 지난 2월 26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세(稅)테크가 가능한 것도 나인원 한남의 흥행 이유로 꼽힌다. 분양 전환 임대아파트라 임대로 거주하는 동안 취득세, 재산세, 종부세를 내지 않고 분양 전환 후 바로 팔더라도 임대 거주 기간을 인정받아 1가구 1주택이면 양도소득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부가 아파트 가격을 잡겠다고 분양가를 통제하고 있지만, 분양 후에는 결국 시세를 따라 가격이 오르면서 분양받는 사람만 시세 차익을 독점하는 '로또'를 양산한 셈"이라고 말했다.
◇"규제 강화에 안전자산 취급받는 고급 주택"
최근 주택 시장은 매매 거래가 줄고 가격이 약세를 보이지만, 고급 주택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고 가격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17년 서울에서 30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 매매 건수는 320건으로 2013년(44건)과 비교해 7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3.3㎡당 최고 분양가(4750만원) 기록을 세운 서울 성동구 성수동 1가 '아크로 서울포레스트'도 순조롭게 청약을 마쳤다. 인근 '갤러리아포레'는 전용 217㎡가 올해 45억~48억원에 거래됐다.
고가 단지일수록 집값 상승률도 높게 나타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지수는 올해 1월 111에서 6월 115.3으로 4.3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지만, 시가총액 상위 50위 아파트 지수는 같은 기간 135.3에서 146.8로 11.5포인트 올랐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한 데다가 부동산 규제로 강남 재건축 아파트 등에 대한 투자 셈법이 복잡해지면서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고급 주택에 돈이 몰리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