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의 맹목적인 ETF 투자가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현대인의 돈 이야기 '익스트림 머니'의 저자인 사티야짓 다스(Satyajit Das)는 블룸버그 기고문을 통해 ETF(Exchange Traded Fund·상장지수펀드)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다스는 금융 파생상품, 리스크 관리 분야 전문가로 지난 2014년 블룸버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인 50인 중 한 명이다.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컨도 지난 2월 "미국 증시는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이라는 스테로이드를 맞은 카지노와 같다"면서 "대공황을 일으킨 1929년 증시 폭락 때보다 더 심각한 증시 붕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 세계 ETF 규모가 5조 달러(약 557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커지면서 시장 교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글로벌 ETF 리서치업체 ETFGI에 따르면 ETF의 글로벌 순자산총액(시가총액)은 2003년 말 2120억달러에서 올해 5월 4조8600억달러까지 불어났다. 한국에서도 ETF가 도입된 2002년 3440억원이었던 순자산총액은 올해 4월 40조원을 돌파했다. 단순한 상품구조와 낮은 수수료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지난 30년 사이 금융투자업계에서 나온 가장 혁신적인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ETF가 왜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지목된 것일까.

◇ETF 시장 커진 이유는 패시브 투자 열풍

ETF 규모가 급격히 커진 것은 패시브(passive) 투자 바람이 거세게 불었기 때문이다. 주가가 오를 것 같은 종목을 발굴해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액티브(active) 펀드라고 하고, 시장 흐름에 따라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펀드를 패시브 펀드라고 한다. 패시브 펀드는 주로 특정 주가지수(index) 상승률만큼 수익을 얻기 때문에 인덱스 펀드라고도 불린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존스 지수(DJI)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5년간 미국 액티브 펀드와 주요 지수를 비교해 본 결과, 미국 액티브 펀드의 82.2%가 S&P1500 지수 상승률보다 낮은 수익률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액티브 펀드는 패시브 펀드보다 투자자가 운용사에 내는 보수가 대략 3배 정도 높다. 펀드매니저의 보수 등 오를 만한 종목을 찾는 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비싼 보수에도 액티브 펀드 수익률이 패시브 펀드를 밑돌자 패시브 펀드로 자금이 급격히 몰렸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주식형 액티브 펀드엔 1150억달러 정도가 순유입(유입이 유출보다 많은 것)된 반면, 패시브 펀드엔 7배가 넘는 8150억달러가 들어왔다. 패시브 펀드 중에서도 거래소에 상장돼 개별 종목을 사고팔 듯 편하게 거래할 수 있는 ETF에 돈이 몰린 것은 당연했다. 국내의 경우 패시브 자금의 80%가량이 ETF다.

◇주가 오르는 종목 더 올려…"ETF가 거품 키운다"

문제는 ETF의 특성상 펀더멘털(기초 여건)과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시가총액 비중에 맞춰 개별 종목을 사들인다는 데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오크트리 캐피털'의 하워드 마크 공동 창립자는 "ETF처럼 자산운용이 자동으로 이뤄질 때 투자 경향이 과장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시가총액 400억원짜리 회사 1개와 100억원짜리 회사 3개, 50억원짜리 회사 6개로 구성된 지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100억원이 들어오면 이 중 40억원은 시가총액 400억원짜리 회사에 몰린다. 반면 시총 50억원짜리 회사엔 5억원만 들어간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시가총액이 높은 종목에 더 많은 돈이 몰린다. 수요가 늘면 주가는 오르기 마련이다. '오르는 주식만 오른다'는 얘기가 나오게 되는 배경이다. 반대로 주가가 내릴 때는 개별 종목 투자자들의 매도세에다 ETF 자금까지 빠지면서 더 빠르게 주가가 내리기도 한다.

줄기세포 치료제 네이처셀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말 네이처셀은 코스닥150 지수에 편입됐다. 이전까지 기관은 네이처셀 주식을 한 주도 사지 않았지만, 코스닥 150지수 편입 결정 이후 기관의 매수세가 대량 유입됐다. 그 결과 1만 2000원대였던 이 회사 주가는 2만원을 돌파했고, 올 초엔 3만원도 넘어섰다. 2월 말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지수에 편입된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3월 16일 장중 6만4600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네이처셀 줄기세포치료제인 조인트스템이 판매 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급락하기 시작했고, 지난달 29일 1만5300원까지 추락했다. 지수 편입 후 패시브 자금이 몰린 데다 임상 성공에 대한 기대감까지 겹치면서 주가가 갑자기 치솟았다가 일시에 폭락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레버리지 ETF 비중, 한국은 20% 달해

레버리지 ETF도 문제다. 1993년 최초의 미국 ETF 설계에 참여해 'ETF의 아버지'로 불리는 짐 로스 스테이트스트리트글로벌어드바이저스 ETF 부문 대표는 "레버리지 ETF는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면서 "우리 회사는 레버리지 ETF 상품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버리지 ETF란 특정 지수의 수익률을 몇 배씩 반영하는 ETF다. 예를 들어 코스피 200을 2배로 반영하는 레버리지 ETF의 경우, 코스피 200지수가 2% 상승하면, 이 ETF는 4% 오른다. 반대로 2% 내렸을 땐 4% 내린다. 전 세계적으로 ETF 시장에서 레버리지 ETF의 비중은 1.5%에 불과하고, 미국의 경우 1.1%에 그치지만, 한국은 20%나 된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개별종목 투자는 기업 가치를 보고 하는 경우가 많지만, ETF 투자는 증시의 상승·하락만 보고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락장에서 ETF 매물이 쏟아지면 증시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고, 레버리지 ETF 비중이 높은 한국은 더욱 위험하다"고 말했다. 액티브 투자를 할 경우 좋은 기업에는 투자 자금이 증가하고 부실기업에서는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자본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 하지만 ETF를 비롯한 패시브 투자가 확대될 경우 좋은 기업에 돈이 들어가지 않고, 시장에서 퇴출당해야 할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문제가 있다.

◇ETF 투자 부작용 최소화해야

미국의 경우 ETF 시가총액이 증시 전체 시가 총액의 10%가 넘는다. 아직 우리나라는 2% 정도에 불과하다. 낮은 비용과 투자의 편의성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ETF 투자는 확대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양한 지수를 개발해 특정 주식에 자금이 몰리지 않도록 하고, 지수의 성격에 맞는 적절한 기업이 편입됐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