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A씨는 P2P(peer to peer·개인간거래) 대출 중개업체 '2시펀딩'에 1500만원을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했다. A씨는 고급 외제차 여러대를 담보로 한 대출 상품에 투자했다. 하지만 투자 만기일이 돌아왔는데도 원금은 커녕 이자도 못받았다. P2P 대출 업체 대표가 투자자들의 투자금 60억원을 들고 잠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P2P 대출 업체가 A씨에게 투자상품 정보로 제공한 외제 차량 사진은 중고차 판매 사이트에서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A씨와 같이 P2P 대출 상품에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개인 대 개인으로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P2P 대출 시장이 최근 3년 사이 급팽창하는 과정에서 P2P 대출 업체들이 난립했지만 금융감독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사기 대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전문 대형 P2P 대출 업체인 헤라펀딩이 부도를 냈고, 일부 업체는 횡령, 허위 공시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P2P 대출 부실률도 경고음을 내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3월 국내 75개 P2P 연계 대부업체를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한 결과, 부동산 PF 대출 부실률이 12.3%로 투자자의 원금 손실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P2P 대출은 돈이 필요한 개인이나 기업이 P2P 대출 중개 업체에 대출을 신청하면 중개 업체가 불특정 다수로부터 돈을 모아 빌려주고, 투자자들에겐 원금에 약속한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 P2P 덩치 커졌지만...횡령·잠적 등 투자자 피해 잇따라

13일 P2P금융협회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P2P 누적 대출 취급액은 2조3929억원으로 1년 전의 8680억원보다 157.6% 급증했다. P2P금융이 한국에서 시작된 2016년 5월 89억원과 비교하면 P2P 대출시장이 2년 새 급팽창한 것이다.

P2P 누적 대출 취급액.

P2P 대출 업체들은 적게는 연 7~8%에서 많게는 연 15~18%의 수익률을 제공한다며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P2P 투자는 대부업법 적용을 받아 수익의 27.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여기에 플랫폼 이용료 등을 제하면 실제 수익률은 P2P 업체들이 내세운 수익률 보다는 많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현재 연 1~3%대인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와 비교하면 P2P 투자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돈이 몰린 것이다.

P2P 대출 시장의 덩치가 급속히 커졌지만 불법 행위에 따른 투자자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P2P 대출 업체 헤라펀딩은 투자금 130억원을 미상환한 채로 지난달 24일 부도를 냈다. 더하이원펀딩 대표와 오리펀드 대표는 최근 투자자들과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펀듀 대표도 지난 1월 해외로 도피한 뒤 사업장을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P2P 투자자 커뮤니티나 인터넷 카페 등에서는 '오너유', '오리펀드', '더하이원펀딩', '2시펀딩' 등은 이른바 '먹튀(투자금을 들고 대표 등이 잠적)' 업체로 지목되고 있다. 천사펀딩, 루프펀딩, HN펀딩, 빌리, 펀듀, 펀딩플랫폼, 모아펀딩 등도 연체나 부실 등 문제가 많은 업체로 투자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피해 사례를 보면 고급 외제차나 고급 시계를 담보로 한 대출 상품을 내놨고 투자금을 유치했는데, 실제로는 담보권을 설정하지 않거나 실제 담보와 상관없는 차량의 사진을 도용한 사기 대출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빌라나 다세대 주택 건축자금을 모집한다고 해놓고 다른 공사 현장의 사진을 도용하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말도 안되는 형태로 투자자를 모집하는데도 고수익을 좇아 많은 사람들이 투자에 나섰다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P2P 대출은 투자자 보호가 전혀 안되고 사기를 당하더라도 투자자 본인이 모든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투자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DB

◇ 관리감독 사각지대 탓인데 당국은 ‘뒷북’

P2P 대출 관련 사기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P2P 대출이 금융당국의 감독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P2P 대출 중개 업체의 경우 상법상 금융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금융당국엔 관리 감독권이 없다. 대신 P2P 대출 중개 업체와 연계한 대부업자가 금융위에 등록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금융당국은 연계 대부업체를 통해 P2P 대출 중개 업체를 간접적으로 들여다 보고 있지만 한계가 있고 문제점을 발견해도 손을 쓰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 금감원은 지난달 P2P 대출 업체 현장 점검에 나서 5개 업체가 관계사와 대주주 등에 대출을 내준 정황을 파악했지만 검찰 이첩 등 후속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금감원이 P2P 대출을 감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문제를 발견해도 법적 근거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법적 근거를 무시하고 관리 감독에 나섰다가는 금감원이 권한에도 없는 과잉 감독에 나선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금융당국이 P2P 대출 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눈을 감고 있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지자 이제서야 금융당국이 P2P대출 관리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뒷북대응’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14일 ‘P2P대출 관리 감독 강화를 위한 관계기관 합동 점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애초 P2P 대출업은 대부업에 불과하다며 금융업으로 인정하는 것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최근 P2P 업계가 관리 감독 사각지대에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 만큼, 정부가 P2P 대출 업체를 어떻게 관리감독할 것인지 방향성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부동산 vs 신용대출 갈라선 업계도 내흥

자정(自淨)에 힘을 쏟아야 하는 P2P 협회 등 P2P 대출 업계도 내홍을 겪고 있다. P2P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한 렌딧, 8퍼센트, 팝펀딩 등의 업체는 지난달 P2P금융협회를 탈퇴해 새로운 P2P협회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P2P 협회가 부동산대출 중심의 업체들 위주로 운영되면서 신용대출 중심의 업체들과 갈등을 빚었다. 특히 부실률과 연체율 산정을 두고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P2P협회는 30~90일간 상환이 지연되면 연체, 90일 이상 장기 연체되면 부실로 계산하는데, 부실률과 연체율을 산정할 때 업체가 취급한 모든 대출액을 분모로 계산해왔다. 일반적으로 금융권에선 대출 잔고를 기준으로 연체율과 부실률을 계산한다.

대출 잔고 대신 전체 대출액을 분모로 부실률이나 연체율을 계산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가 나온다. 위험도가 과소평가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건당 대출금이 큰 부동산 P2P 업체의 경우 연체율, 부실률 산정 방식이 바뀌면 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어 산정 방식 변경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감독당국이 일반 금융회사처럼 총 대출액이 아닌 대출 잔액을 분모로 연체율과 부실률을 산정하라고 얘기했는데도 P2P협회 내부에서 반발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산정 방식을 바꿔 연체율이나 부실률이 증가하게 되면 투자자 모집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 업체들이 반대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당장 투자자 모집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투자자 신뢰부터 찾는 게 필요한데, 편가르기나 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