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160m에 이르는 연안여객선 실버 클라우드호가 부산 영도에 정박해 마무리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승객 1200명과 자동차 150대를 동시에 실을 수 있는 여객선 규모는 거대했다. 선박 내부에 들어서자 용접 냄새와 망치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로자들은 오는 10월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점심시간도 잊은 채 내부 인테리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동안 한국의 연안에서 운행한 여객선들은 일본 등에서 수입한 낡은 중고 선박이었다.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역시 일본 배였다. 정부는 뒤늦게 연안여객선 현대화 사업에 나서 완도와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을 국내 기술로 만들기로 했다. 그 주인공이 실버 클라우드다.

실버클라우드를 제작 중인 조선소는 현대, 대우, 삼성 등 대형 3사가 아니다. 과거 부실 조선사로 낙인찍혀 퇴출 위기까지 몰렸던 중형 조선소 대선조선이다.

글로벌 조선경기 침체 이후 SPP, 성동 등 중형 조선소들이 직격탄을 맞아 줄줄이 파산하거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선조선은 달랐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그 비결은 두가지다. 첫 번째는 선종 특화 등 발 빠른 사업 재편이었고 두 번째는 고통을 분담한 노사 화합이었다.

지난 5일 찾은 대선조선 부산 영도 조선소에는 부슬비가 내려 때 이른 더위를 식혀주고 있었다. 영도조선소 모든 작업장에는 선박에 붙일 철강제가 가득차 있었다. 근로자들은 빨간 불꽃을 내며 용접작업에 한창이었다. 조선업 불황도 대선조선을 비껴간 듯 근로자들은 지게차로 쉴새 없이 선박 부품을 실어 날랐다. 대선조선의 최대주주는 수출입은행(83.03%)이다.

◇ 특화·틈새시장 공략해 수주가뭄도 '훌쩍'

지난 5일 컨테이너선 마무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부산 영도 대선조선소.

2012년만 해도 대선조선은 1740억원의 적자를 냈던 부실 덩어리였다. 그 당시 정부는 대선조선을 청산대상 1순위로 꼽았고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2010년 은행 자율협약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퇴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3년간 누적 영업적자만 무려 3389억원이었다.

다행히 2013년에 찾아온 조선업의 반짝 호황 덕에 대선조선의 생명선은 이어졌다. 전환점이 마련된 것은 2014년이었다. 근본 체질을 개선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대선조선은 위기 극복 방안으로 특화 틈새 전략을 채택했다. 경쟁이 치열한 선종을 피하면서 회사 규모에 맞는 특화 선종에 집중하기로 했다. 대선조선은 고부가가치선인 SUS 탱커(석유화학제품선), 6만5000t급 이상 PC탱커(석유제품운반선), 연안여객선 등으로 선종 포트폴리오를 확 바꿨다. 기존 주력 선종은 STX조선, 현대미포조선 등과 경쟁했던 MR탱커, 1000TEU급 컨테이너선 등이었다. 하지만 조선소 규모와 자본력 등에서 뒤처졌던 대선조선이 이들 대형 조선사와의 경쟁에서 버틸 재간이 없었다.

대선조선의 특화 전략은 적중했다. 운도 따랐다. 때마침 세계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조선경기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도 석유제품운반선 발주가 살아났다. 조선업의 수주가뭄이 시작된 2015년 10척을 수주하더니 중형 조선소가 단 한 건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했던 2016년에는 8척, 1500억원 규모의 수주 목표를 달성했다.

2016년은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대형 3사마저 극심한 수주절벽에 시달렸던 최악의 시기였다. 현대중공업은 연간 수주 목표량의 절반밖에 수주하지 못했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역시 수주 목표액의 10~15%라는 초라한 성적을 냈다. 한때 세계 10위권이었던 SPP조선은 결국 청산됐고 성동조선은 이 시기 겪은 수주 불황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지난 3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대선조선은 지난해에도 14척을 수주했다. 올해의 상황도 긍정적이다. 5월 말 기준 누적 수주액은 1700억원이다. 올해 목표액 4500억원의 38% 수준이다. 지난해에는 매출액 2641억원에 영업적자는 280억원 수준으로 줄었고 올해는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

공주식 대선조선 본부장은 "2014년부터 특수선 전문조선소로 틈새를 공략해 안정적인 실적을 내고 있다"며 "올해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 존폐기로에서 손잡은 노사...4년째 무분규 임단협 타결

지난달 3일 대선조선은 국내 기술로 제작된 첫 연안여객선 실버 클라우드 진수식을 진행했다.

대선조선 정상화의 1등 공신은 뭐니 뭐니 해도 노사 화합이다.

2014년 이전까지 대선조선 노사 관계도 여느 조선사와 다르지 않았다.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2013년도 임단협 과정에서는 당시 노조 집행부가 상급노조인 한국노총에 지원을 요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회사가 존폐위기에 놓인 상황에서도 노사 관계는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는 사이 정부가 채권단을 통해 대선조선의 청산 계획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노조도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회사와 싸워 1~2년 임금을 올린다고 한들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되면 평생직장을 잃게 되는 상황이었다.

하영수 대선조선 노조위원장은 "2014년 노조 집행부를 다시 구성하면서 사측과 관계를 재정립해야 했다"며 "근로자들도 고통분담 없이 회사를 살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선조선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가 20년으로 애사심이 남달랐다는 점도 노사 화합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선조선 노사는 2014년에 첫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이뤄냈다. 노사의 무분규 임단협 타결은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이어졌다. 더 나아가 노조는 임금 반납에도 동참했다. 2015년 임원 10%, 직원 5%를 시작으로 2016년 임원 20%, 직원 10%, 지난해 임원 25%, 직원 15%의 임금을 반납했다. 그 결과 대선조선은 지난해 인건비를 2014년 대비 28.4%나 감축했다. 또 근로시간 단축, 잔업·특근폐지, 연월차휴가 사용 등으로 지난해 제조간접비를 전년대비 197억원을 절감했다.

임금 반납은 고용유지로 이어졌다. 대선조선 직원수는 2015년 385명에서 2016년 335명, 지난해 322명, 올해 336명으로 줄긴 했다. 하지만 수주가뭄으로 정부와 채권단이 자구안을 요구한 2016년 한 차례 실시한 명예퇴직 외에는 모두 자연감소분이다. 임금반납으로 인건비를 줄여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피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 시기 주력 선종에 집중하기 위해 경력직을 계속 채용했다.

하 노조위원장은 "근로자들의 반발도 있었고 어용노조라는 비판도 받았다"며 "하지만 정부의 중형조선사에 대한 자금지원 불가 결정, 인수합병에 대한 현황 등 정부와 채권단으로부터 전달받은 자료를 현장 근로자들에게 숨김없이 공개했고, 점차 회사와 노조 집행부, 노조원 간 신뢰가 쌓였다"고 말했다.

다만 대선조선 노조도 임금 반납 등 장기간 고통 분담으로 피로감이 쌓일 대로 쌓인 상황이다. 대선조선 근로자들은 하루빨리 회사가 흑자로 돌아서고 새 주인도 나타나 안정적인 임금을 다시 받기를 고대하고 있다. 공주식 전무는 "회사가 정상화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그동안 고통을 참고 묵묵히 일한 근로자에게 성과를 보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대선조선의 새로운 도전 '연안여객선'...국내 1호 연안여객선 수주

대선조선은 2015년부터 척당 500억원에 이르는 연안여객선을 새로운 먹거리로 공략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2020년까지 국내 노후 여객선 63척을 안전성을 강화한 신규 선박으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연안여객선이야말로 중형 조선사에 딱 맞는 선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연안여객선은 수요가 제한적이어서 동시다발적 발주가 어렵다. 또 선박의 내부 작업기간이 다른 일반 선박과 비교해 3개월 더 걸려 생산설비 회전율이 낮은 편이다. 이런 연안여객선의 건조 조건은 대형 조선소와는 맞지 않는다. 반면 중형 조선소는 설비를 비교적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고 작업 기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대선조선은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진행된 연안여객선 현대화 사업 연구개발에 참여했다. 연안여객선 전문인력도 10여명을 새로 뽑았다. 그해 대선조선은 현대미포조선을 누르고 정부가 발주한 국내 1호 연안여객선을 수주하는 쾌거를 이뤘다.

대선조선은 올해 하반기 연안여객선 수주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는 하반기에 연안여객선 3척 건조를 위한 입찰 공고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공주식 전무는 "현대미포조선 등 다른 조선사도 연안여객선을 건조할 수 있지만 연안여객선만을 위한 전문성을 가진 곳은 대선조선 외에 많지 않다"며 추가 수주에 자신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