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한계 고려해 재정·거시건전성 정책 조합 모색해야"
"수요 부진 상황에서 재정 지출의 구축 효과 낮아…확장적 재정 필요"

이주열(사진) 한국은행 총재는 4일 "통화정책의 한계를 고려해 재정 정책, 거시건전성 정책 등 다른 정책과 조합을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요 부진 상황에서는 재정 지출의 구축(crowding-out) 효과가 크지 않아 확장적인 재정 정책이 필요하고, 저성장, 저인플레이션 환경에서 통화 정책이 경기 회복을 추구하면 금융 불균형이 누적될 수 있어 거시건전성 정책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의 역할,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한은이 개최한 국제컨퍼런스에서 "확장적인 재정 정책과 완화적 통화 정책을 운용하면 효과적으로 거시 경제 안정을 이룰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통화 정책의 또 다른 주요 목표인 금융안정을 함께 도모하려면 거시건전성 정책과 공조가 절실하다"고도 했다.

이 총재의 이날 발언은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 중앙은행과 통화 정책의 역할 논의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왔지만, 성장 지원, 물가와 금융시장 안정 등 세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이 커진 한은의 입장도 반영된 것이어서 주목받았다. 이 총재는 발언 첫머리에 "각국 중앙은행이 위기 시 활용한 비정통적 정책을 정상화하고 있고, 통화 정책 환경이 위기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며 "중앙은행의 역할을 어떻게 제대로 수행할 지, 또 새로 요구되는 역할은 없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한은을 비롯해 세계 중앙은행이 직면한 가장 큰 통화 정책 환경 변화는 경제 활동과 인플레이션 간 관계가 약화됐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경기 회복과 함께 실업률이 하락하면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러나 위기 이후 이런 상관관계에 의문이 생기면서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운용에 어려움이 커졌다.

중립금리가 위기 이전보다 상당폭 낮아진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중립금리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잠재성장률만큼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금리 수준으로, 중립금리가 낮아지면 경기가 하강국면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 중앙은행이 경기 변동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게다가 최근 중립금리가 낮아진 배경에는 고령화, 생산성 저하 등 장기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돼 앞으로 중립금리가 계속 낮은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국가의 통화 정책이 다른 국가 경제나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각국 금융과 교역이 긴밀하게 연계된 결과다. 이 총재는 "최근에도 미 금리 상승과 달러화 강세가 일부 신흥국 금융 불안의 원인이 됐다"며 "앞으로 선진국이 통화 정책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급격한 자본이동과 국제 금융시장 불안은 언제든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은을 포함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변화된 환경에서 통화 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 나섰다. 이 총재도 이런 노력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선진국 중앙은행은 정책금리가 제로(0) 하한에 도달했을 때 대규모 자산매입(양적 완화), 포워드 가이던스, 마이너스 금리 등 비전통적인 정책 수단을 동원했는데, 이런 수단이 어떤 여건에서 잘 작동하고, 장기적으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에서도 비전통적인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정책 대안이 있는지도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커뮤니케이션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정책 환경이 변화하고 정책 대응이 달라지면 가계와 기업 등 경제 주체의 불확실성도 확대돼 통화 정책의 효과와 신뢰가 낮아진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이 적극적인 정책 커뮤니케이션에 나서 불확실성을 낮추고 경제 주체들의 기대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온라인 언론과 소셜미디어(SNS) 확산 등 정보 환경이 크게 변화된 점을 감안해 효과적인 소통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