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1일 키 175cm 이상의 금발의 여성이 성큼성큼 편집국 안으로 들어왔다. 함께 온 건장한 남자의 키도 190cm는 족히 돼 보였다. 아다 요뉴세 림포(Lympo)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와 타다스 마우루카스 최고전략임원(CSO)이었다. 그들은 림포를 “암호화폐(가상화폐)’ 보상을 통해 사용자의 운동 동기부여를 돕는 블록체인 기반 기업”이라고 소개하며 홍보차 방한했다고 말했다. 둘다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고 현재 사업도 리투아니아에서 하고 있다.

림포는 지난 2월 ICO(가상화폐공개)를 통해 150억원을 조달했다. 지금은 오는 9월을 목표로 운동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사용자가 운동 목표(림포 챌린지)를 달성하면 림포 토큰으로 보상을 받고 또 획득한 토큰으로 림포 마켓에서 운동장비나 의류를 구매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구현 중이다.

요뉴세 CEO는 “미래에는 ‘갤럭시 기어’ ‘샤오미 미’ ‘핏빗’ 등 웨어러블 기기 제조사들과도 제휴하고 보험사, 스포츠 회사, 피트니스센터 등에 사용자의 운동 데이터를 판매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 예정”이라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그들은 백서(white paper·사업계획서)를 수십 번 뜯어고쳐 인터넷에 공개했고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림포 투자자들을 집중적으로 모았다. 텔레그램 커뮤니티에는 코인 전문 투자자들이 즐비해 있다고 한다. 림포 토큰은 이더리움의 스마트 계약 기능을 이용해 만들었다. 최고기술책임자(CTO)도 ICO에 성공한 후에 영입했다.

림포는 여자 테니스 세계 랭킹 2위인 캐롤린 워즈니아키를 림포의 국제 홍보 대사로도 영입했으며 미국프로농구 구단 ‘댈러스 매버릭스(텍사스주)’와도 3년간 제휴를 맺었다.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의 연습용 셔츠에 림포 로고가 노출되고 림포 토큰으로 경기 티켓을 구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이들은 한국 사업 파트너 김성민 씨도 온라인으로 만났다. 출판사 대표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디지털 전략 기획 MBA 부교수를 겸임하는 김 씨는 “코인에 직접 투자해 보며 경험을 쌓은 후 림포의 가능성을 보고 한국 비즈니스 매니저를 맡아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올초 0.02달러 수준이었던 림포 토큰의 가격은 6월 1일 낮 12시 기준 0.138달러로 5배 넘게 올랐다. 시가총액은 9991만달러(약 1000억원)다.

이 모든 게 가상화폐에 대한 ‘묻지마 투자’ 덕분은 아닐 것이다. 기자는 전 세계를 누비는 두 사람을 보면서 ‘토큰 이코노미’의 도도한 부상을 본다. 유무형의 모든 가치를 유동화(토큰화)하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림포는 ‘운동 목표 달성’을 자산화하고 그 자산을 토큰을 통해 거래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블록체인 기반 블로그인 스팀잇은 글을 쓴 사람뿐만 아니라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른 사람에게도 토큰으로 보상해 준다. 스팀잇은 ‘큐레이션’이라는 행위를 유동화한 것이다.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파트너변호사는 창작물을 일정 조건 하에 널리 이용할 수 있는 라이선스인 ‘CCL(Creative Commons Licence)’를 국내 보급하는 데 10년 넘게 헌신해 왔다. 음원과 소프트웨어 등 디지털 자원은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널리 쓸수록 유용성은 더 올라간다는 신념으로 라이선스 공유 운동을 벌였다.

그는 “솔직히 자신의 창작물을 공유한 창작자에게 마땅하게 보상할 방편이 없어 CCL 확산 운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최근 부상하는 토큰을 이용하면, CCL 확산하는 데 필요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토큰을 이용한 인센티브 구조를 잘 만들면, 창작물을 공유한 창작자에게 충분한 보상까지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무임승차(불법 다운로드)로 디지털 공유지가 파괴되는 ‘공유지의 비극’ 문제와 구글·네이버·페이스북 등 플랫폼 사업자에 부(富)가 집중되는 문제도 풀어볼 수 있다.

리투아니아는 인구 287만명(세계 140위)의 고유 언어를 쓰는 소국이다. 발트 3국(발트해 남동 해안에 자리한 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은 예로부터 강대국 지배를 받아왔고 18세기부터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1918년 기점으로 독립을 했다가 1940년 구소련에 합병됐고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개혁 정책 덕분에 1991년 다시 독립했다(외교부 자료).

하지만, 기업 홍보와 사업 제휴를 위해 ‘이역만리’ 한국을 찾은 두 젊은이의 눈빛은 토큰 이코노미 세계에서는 국적과 국경, 나이, 돈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요뉴세는 30세, 마우루카스는 27세다.

춘천 마라톤을 뛰고 100 토큰을 받는 세상, 매일 아침 스쿼드 10개 한 덕분에 받은 토큰으로 보험료를 깎을 수 있는 세상이 상상 속의 일만은 아니라는 점을 먼 나라에서 온 2명의 리투아니아 젊은이를 통해 확인했다. 누구나 참여가능한 토큰 기반의 인센티브 시스템이 비즈니스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 지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