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영향 없다→판단하기 이르다→영향 있다→판단하기 성급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광공업 생산 투자 조정 받고 있다→회복 흐름 이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경제 정책 총괄 부처인 기획재정부의 최근 경기 진단이 오락 가락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경제 정책 수장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16.4%)이 고용시장에 미친 영향에 대해 한달새 4번이나 미묘하게 다른 평가를 내려 비판을 받고 있다.

◇ 최저임금 인상 효과 “없다, 판단 이르다, 있다” 미세하게 발언 바꿔

김 부총리는 지난달 16일 악화된 고용 상황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당시 김 부총리의 발언은 지난 2월과 3월 취업자수 증가폭이 두달 연속 10만명대로 추락한 ‘고용 쇼크’에 대한 평가였다. 이에 대해 경제 부총리가 고용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자 김 부총리는 일주일 후 워싱턴 D,C 출장길에서 기자들을 만나 “발언에 오해가 있다”고 해명 입장을 내놨다. 최저임금 인상이 시장에 영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영향을 판단하기 이르다는 취지였다는 설명이다.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을 1월부터 인상했기 때문에 1~3월 고용 숫자만 보고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판단하기엔 정보량이 너무 적다”며 “최소 6개월은 지나야 (최저임금 인상 영향에 대한) 판단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한 달이 지난 이달 16일 국회에서 “최저임금이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또 다른 입장을 밝혔다. 이날 발표된 통계청의 ‘4월 고용 동향’에선 2월과 3월에 이어 취업자수 증가폭이 10만명대에 그치는 고용 쇼크를 이어갔다. 그의 발언은 전날 “최저임금 인상 영향이 없다”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과 비교되면서 ‘엇박자’ 논란을 일으켰지만, 그나마 어려운 경제 상황을 직시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엇박자 논란을 의식한 김 부총리는 하루 만에 또 다시 발언을 수정했다. 김 부총리는 17일 최저임금 인상 영향에 대해 “더 긴 기간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이 변화한 것이 아니다”며 “최근 몇 달 고용통계만을 보고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기에는 성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김 부총리의 평가가 지난달 워싱턴 D,C 발언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한달 새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발언이 4번이나 미묘하게 바뀐 셈이다.

지난 11일 기재부는 문자 메시지를 통해 ‘그린북’ 종합평가 문구를 수정했다.

◇ 기재부 3시간 만에 ‘경기 중립적 표현’ ‘긍정적’으로 바꿔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도 지난 11일 최근 경제 상황을 평가하는 보고서의 문구를 3시간 만에 수정해 비판을 받았다. 기재부는 이날 ‘5월 최근 경제 동향(그린북)’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1~2월 높은 기저 영향 등으로 광공업 생산과 투자가 조정을 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기재부가 지난 4월까지 경제 동향 보고서에 언급했던 ‘회복 흐름 지속’이라는 단어가 빠진 것이다.

이에 정부 안팎에서는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한 기재부의 판단이 ‘긍정적’에서 ‘중립적’으로 바뀐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자 기재부는 보고서 배포 3시간 만에 부랴부랴 최근 경제 동향 분석에 “전반적으로 회복 흐름이 이어지는 모습”을 추가한다고 공지했다. 기재부가 최근의 경기흐름을 진단하는 문구를 ‘중립적’인 표현에서 3시간만에 ‘긍정적’인 표현으로 변경한 것이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등이 경기 둔화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김 부총리가 경기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을 고집한 것도 이같은 기재부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부총리는 지난 17일 김 부의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경기가) 침체 국면의 초입"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 “1분기가 지났지만 여러 가지 해석할 수 있는 내용과 메시지가 혼재돼 있다"면서 “어떤 분이 어떻게 얘기하고 한 데 대해 우리가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경제 상황을 월별 통계를 갖고 판단하기엔 성급한 면이 있다"고 했다.

이같은 김 부총리 발언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자 김 부의장은 다시 페이스북에 새 글을 올려 "현상은 일시적일 수 있으나 현상이 나타나게 하는 구조는 추세를 결정한다"면서 "지금 눈에 보이는 통계는 구조적인 현상의 결과이며, 현재 구조가 지속되는 한 통계적인 현상이 개선되기 어렵고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김 부총리와 거시경제 정책을 공조하는 이주열 총재도 같은날 “지난해 이후 우리 경제가 비교적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대내외 여건이 만만치 않아 앞으로 경제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며 “국내로 눈을 돌리면 먼저 고용 상황이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나친 경기 낙관론에 대해 우회적으로 경고한 셈이다.

◇ 전문가 “경기 지표 해석의 차이 있지만, 무리한 방어 위험”

경제 컨트롤타워가 이같이 흔들리는 배경에는 최근 나빠지고 있는 경기 지표들이 있다. 2~4월 전년 대비 취업자수 증가폭은 석달 연속 10만명대 초반을 맴돌고 있다. 취업자 증가폭이 석달 이상 10만명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닥쳤던 2008년 9월~2010년 2월(18개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 3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0.3%를 기록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최고조였던 2009년 3월(69.9%) 이후 9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악화된 경기 지표가 정책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고용 지표 부진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탓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정부가 지나치게 소모적인 논쟁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취업자가 급감하는 등 고용지표가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는 데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영향이 있다, 없다’는 것을 둘러싸고 논쟁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라며 “고용이 정상적으로 증가되도록 성장 동력을 확충할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도 “최근 경기 지표가 악화된 원인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일시적인 하락세인지 추세적인 하락세인지에 대해 정부와 전문가들의 해석이 다른 것 같다”며 “주무 부처에서 무리하게 방어하기 보다는 외부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좀 더 신중한 자세를 보일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