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의 한 기계 공장.

15일 오후 2시 인천 남동공단에선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 속에서도 스산함이 느껴졌다. 원래 원자재와 생산품을 분주하게 실어날랐던 바쁜 시간대였는데, 상당수 공장들은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길거리에는 ‘공장 부지 급매’라고 적힌 플래카드들이 걸려있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2월 현재 남동공단 입주 업체의 가동률은 61.1%로 3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반적인 제조업 불황에 한국GM 구조조정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입주 업체 수는 2월 현재 6684곳으로 2년 전인 2016년 2월 6972곳보다 300개 가량 감소했다.

지난 3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70.3%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월(69.9%) 이래 최저치로 떨어진 가운데 제조업 가동률 하락 현상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16일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광업제조업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조사 대상 68개 제조 업종 가운데 80%에 달하는 53개 업종의 가동률이 1년 전에 비해 하락했다. 특히 17개 업종의 가동률은 10%포인트 이상 추락했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자동차, 조선뿐 아니라 석유화학, 전기전자, 기계, 경공업 등 전방위에서 가동률의 하락 현상이 빚어졌다. 이중 12개 업종의 가동률은 지난해 10월 이후 6개월 연속 장기간 하락 곡선을 그렸다. 반면 가동률이 오른 업종은 반도체, 휴대폰 등 IT(정보기술)를 중심으로 15개에 그쳤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는 제조업 가동률 부진에 대해 ‘일시적 현상'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지만 업종별 가동률로 보면 한국 경제의 원동력인 제조업이 사실상 불황 국면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팽팽하다. 최근 취업자수, 실업률 등 고용지표가 악화된 것도 제조업 가동률 급락이 주요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전반적으로 제조업 업황이 크게 악화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몇 개월 이상 넓은 범위의 가동률 하락이 나타난 것은 경기 변동보다는 구조적인 요인이 더 작용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 4개 중 1개 10%p 이상 급락…”일시적 현상 아냐”

1년 전과 비교해 가동률이 10%포인트 이상 급락한 업종은 17개로 제조 업종 4개 중 1개 꼴이었다. ‘선박 및 보트(-13%p)’, ‘자동차 부품(-11.7%p)’ 등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자동차, 조선 업종에만 그치지 않았다. ‘전동기, 발전기 및 전기 변환·공급·제어 장치(-12.2%p)’, ‘측정, 시험, 항해, 제어 및 기타 정밀기기(-14.0%p)’, ‘가정용 기기 제조(-14.3%p)’, ‘안경, 사진 장비 및 기타 광학기기(-10.3%p)’, ‘석유 정제품 제조업(-11.0%p)’ 등 전자, 기계, 석유 업종의 가동률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방적 및 가공사(-12.2%p)’ ‘기타 종이 및 판지 제품(-17.6%p)’, ‘그외 기타 제품(-27.2%p)’ 등 경공업 분야의 가동률도 추락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이후 6개월 연속 가동률이 하락한 업종도 12곳에 달했다. ‘자동차 부품’, ‘시멘트, 석회, 플라스터 및 그 제품’, ‘그외 기타 제품’, ‘유리 및 유리 제품’, ‘철도 장비’ 등이었다.

가동률이 상승한 업종은 ‘의료용 기기(11.2%)’, ‘통신 및 방송 장비(8.0%)’, ‘영상 및 음향기기(3.6%)’, ‘반도체(2.4%)’ 등 IT를 중심으로 한 15개였다. ‘신발 및 신발 부문(20.1%)’, ‘비금속 광물제품(4.9%)’, ‘비료 및 질소화합물(2.2%)’ 등도 가동률이 상승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 약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지난해 중국의 사드(THADD) 보복 등에 따른 수요 위축에 이어 올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비용 부담 증가까지 겹치면서 경쟁국에 비해 제조업 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OECD 경기선행지수는 주요국의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독 한국은 경기 둔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지수는 업황, 재고량, 장단기 금리 차 등 6개 변수를 활용해 6~9개월 후 경기흐름을 예측하는 지표다. 100을 기준으로 그 보다 높을 수록 경기 팽창, 그 이하일 수록 경기 하강으로 판단한다.

지난 2월 한국의 OECD 경기선행지수는 99.76을 기록해 2014년 9월(99.83) 이후 3년5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한국의 OECD 경기선행지수는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 연속 100에 못미쳤다.

반면 미국 등 주요국들의 경기 선행지수는 100을 넘어서고 있다. OECD 올해 2월 평균 경기선행지수는 100.12였다. 지난 2016년 4월 99.51로 바닥을 찍은 후 꾸준히 올랐다. 지난해 5월 이후 100을 넘어섰다.

◇ 고용 많은 업종이 가동률 더 떨어졌다

또다른 문제점은 제조업 가동률 하락이 고용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전년 동기 대비 가동률이 하락한 53개 업종 종사자 수(10인 이상 사업장, 2016년 기준)는 253만7000명으로, 가동률이 상승한 15개 업종 종사자 수 42만6000명의 6배에 달한다. 가동률이 10%포인트 이상 내려간 17개 업종의 종사자 수는 70만4000명으로 가동률 상승 업종 종사자 수의 1.7배다. 기업이 가동률에 맞춰 고용인원을 탄력적으로 조정하진 않지만, 신규 고용을 줄이고 구조조정 등으로 인력을 내보낼 가능성은 높아진다.

실제로 최근 취업자수 통계에서 이같은 흐름은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3월 취업자수 증가폭은 전년 동기 대비 11만2000명에 그쳤다. 취업자수는 보통 전년 동기 대비 30만명 정도가 늘어야 고용시장이 안정돼 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제조업 취업자수 증가는 1만5000명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업 구조조정 등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2016년 3월~2017년 3월을 제외하고 이전 연도 같은 기간 동안 제조업 취업자 수는 10만명 이상 늘어난 바 있다. 제조업 부진이 고용 시장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가동률 상승 업종의 고용 인원이 하락 업종 대비 크게 적기 때문이다. 가동률 상승 업종 가운데 종사자수가 5만명을 넘는 업종은 '반도체(11만4000명)', '통신 및 방송장비(6만1000명)', '직물직조 및 직물제품(8만6000명)' 등 3곳에 불과하다.

업종별 고용인원에 가동률 증감폭을 곱하면 일종의 '고용 충격 지수'를 구할 수 있다. 전년 대비 가동률이 하락한 53개 업종에서 도출한 값을 모두 더하면 18만200에 달했다. 반면 가동률이 오른 15개 업종에서 계산한 값을 더하면 1만9300에 불과했다.

조준모 교수는 "정확한 지표라 볼 수 없지만 가동률 하락의 부정적 영향이 고용인원이 많은 산업에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