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의 인구 95만 도시 오스틴은 시내 곳곳이 공사판이다. 지난 3월까지 1년간 신규 주택 1만6457가구가 공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2006년 말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지난 1년 동안 오스틴 집값은 7.2% 뛰었다. 오스틴의 건설업 일자리는 연인원(延人員) 기준 2009년 82만개에서 지난해 109만개로 32% 늘었다. 고용과 소득 증가율은 최근 미국 주요 도시 가운데 셋째~넷째를 오르내린다.

소비자가 집을 사들이면서 집값이 오르고, 이 수요를 겨냥한 건설사가 새집을 지으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여기서 돈을 번 사람들이 다시 주택 구매를 포함해 전체 소비를 늘리는 모습의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런 선순환이 미 전역에서 나타나면서 실업률이 18년 만에 최저치인 3.9%까지 떨어지는 등 경기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 못지않게 건설·부동산업 비중이 큰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집값 상승이 경제 선순환 이끄는 미국

미국 경제가 본격적인 호황에 들어서고 있다. 미국 기업 48%가 작년 말~올해 초 사이에 임금을 올린 것으로 미국실물경제학회 조사에서 나타났다. 이 조사가 시작된 1982년 4월 이후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경제성장률도 예상치를 0.3%포인트 웃도는 2.6%로 예측됐다.

그래픽=김성규

전문가들은 미국 경기 회복 원인으로 '파격적인 법인세 인하'와 '해외 기업 유치'를 꼽는다. 업종별로는 2008년 위기의 원인이 됐던 건설·부동산업의 회복도 큰 역할을 했다. 미국주택협회에 따르면,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주택산업 생산액 비중(%)은 15% 수준이다. 작년 4분기 기준 미국의 실질 GDP성장률은 2.9%였고, 산업별로 보면 건설업이 8.5%로 가장 많이 올랐다. 건설 투자액도 2011년 7883억달러에서 지난해 1조2340억달러으로 늘었다. 지난 3월 기준으로 미국에서 건설 중인 주택은 112만5000가구로, 2007년 7월 이후 가장 많다. 작년 한 해 건설 분야에서만 전년보다 35% 늘어난 2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집값도 오름세다. 2월 기준 미국 20개 도시의 집값이 지난해보다 6.8% 뛰었다. 연간 상승 폭으로는 2014년 중반 이후 가장 가파르다.

이러한 자산 가격 상승은 그 자체로 실물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산 증대→소비 활성화→경기 활성화→투자·생산 확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국도 한국처럼 중산층 이하 계층은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인데, 개개인의 보유 부동산 가치가 수년간 꾸준히 오르면서 소비 심리 회복을 시작으로 전체 경기가 회복세를 타는 중"이라고 말했다.

건설 하향세가 경제 걸림돌 된 한국

한국 경제도 건설업 의존도가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건설업 취업자 수는 72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5만2000여명이 늘었다. 조사 대상 20개 업종 중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건설업 고용유발계수 역시 10.2명으로 전(全) 산업 평균치인 8.7명을 웃돈다.

매년 GDP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15% 이상이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미국과 정반대다. 정부는 8·2 부동산 대책을 시작으로 거의 매달 부동산 규제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 결과 4월 들어 국내 부동산 시장은 상승세가 완연히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인프라(SOC) 예산도 작년 대비 20% 축소했다.

LG경제연구원은 3일 발표한 금년도 국내외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국내 경제성장률이 작년(3.1%)보다 다소 낮아진 2.8%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핵심 원인으로 꼽은 게 건설산업의 하향세다. 건설투자 성장률이 작년 7.6%에서 올 상반기 1.3%로 줄어들고, 하반기에는 마이너스(-) 1.8%로 역(逆)성장한다는 것이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가격을 시장 논리에 맡기는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 정부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이 오른다는 이유로 전방위적인 억제책을 내고 있다"며 "이러한 방향의 부동산정책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건설·부동산을 통한 성장은 2008년 같은 버블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월 한국을 스위스·캐나다·호주 등과 함께 '미국 버블기 수준의 가계부채 급증 국가'로 지목했다. 그럼에도 이들 국가의 금융 당국이 대출 기준 등을 엄격하게 하는 방식으로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급격하고 전면적인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