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의 핵심의제로 예상되는 비핵화와 종전협정 외에도 경제협력, 문화교류, 이산가족을 포함한 인적 교류 등 추후 조치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북한 주민들의 건강과 보건의료 실태도 중요해질 것으로 점쳐진다. 오랜 시간 고립된 환경에서 식량, 에너지가 부족한 북한 주민들은 보건상 특성이 있을 수밖에 없어 향후 대북지원이나 교류활동시 보건의료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열악한 보건체계와 영양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 가장 최근 사건은 작년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하다 북한군의 총격에 부상을 입은 북한 병사 오청성(26)씨의 수술이었다. 당시 오 병사의 배 안에서는 옥수수 알갱이와 함께 국내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많은 기생충이 발견됐다.

조선비즈는 26일 통일보건의료학회, 서울대통일의학센터 등 국내 의료계를 통해 북한의 보건의료 환경과 실태를 알아봤다. 의료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 남북 의료 교류는 제법 활발했다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이후 10년간 중단됐다. 북한 의료진의 실력은 우수한 편이지만 공공의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 북한 주민들의 건강 상태는 예상외로 열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2017년 11월 15일 수원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려다 총상을 입은 북한군에 대해 2차 수술을 한 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예상외로 심각한 북한 주민 건강 상태

작년 11월 북한 귀순병사 오씨를 수술했던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는 오씨의 2차 수술 후 브리핑에서 “수술 과정에서 손상된 내장에서 기생충이 계속 뚫고 나와 분변과 섞여 오염을 일으켜 애를 먹었다”며 "외과의사로서 20년 동안 볼 수 없었고,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기생충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이 교수는 "한국에서는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웬만큼 방역시스템이 갖춰져 이러한 기생충이 발견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일부 북한 의료진은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북한의 보건의료체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일보건의료학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북한 산모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76명으로 남한의 7배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1985년부터 2014년까지 30년간 구축한 북한 영아·아동 사망률 데이터 분석 결과, 북한 영아 사망률은 남한의 8.8배, 아동 사망률은 남한의 9.3배 높았으며 주 원인이 조산(22%), 선천성 이상(13%), 감염성 질환(30%)으로 꼽혔다.

서울대 통일의학센터 연구팀은 “추후 대북지원 환경 변화에 대비해 현재 북한의 보건의료체계 변화 흐름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장마당(시장)’서 의약품 거래…보건의료체계 정상 작동 안돼

북한 내 의사들의 생활도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1990년대 중반부터 겪은 고난의 행군과 계속되는 경제침체, 국제 사회의 제재 등으로 의료인들에 대한 보상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료기관 시설은 노후화됐고, 의약품 보급도 부족하다. 일부 북한 의료진은 환자로부터 치료와 처방에 대한 대가를 암암리에 받아 거래하고 있다. 비공식적 진료·치료행위가 확대되면서 무상치료제 의미는 퇴색됐다는 얘기다.

장비를 이용한 객관적 검사가 불가능해 환자의 호소가 질환의 진단과 심각성 판단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환자로선 증상의 심각성을 호소해야 치료와 약물을 우선으로 받을 수 있어 과장해 증상을 호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북한 장마당 전경.

‘장마당(시장)’에서는 항생제, 감기약, 아스피린, 코르니목사돌, 기생충 약, UN약, 북한제조약품, 러시아·중국에서 밀수해온 약 등이 상품이 된다. 약가 책정도 장마당에서 물품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고, 고갈되면 가격이 높아지는 식이다. 1차 의료체계인 동·리 지역의 진료소 역시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주민들이 장마당 등 비공식적 의료전달체계를 통해 진료와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 통일의학센터는 “2000년대부터 번성한 장마당을 중심으로 의약품이 시장을 통해 거래되고 있고, 북한의 공적인 보건의료체계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기에 한계를 지닌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북한 주민들이 약물 오남용 위험에 처해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한 탈북의사는 “2007년에는 설사로 병원에 오면 아편을 달여서 병원에서 만든 약을 줬다’며 “최근엔 감기에도 먹는 모양이고, 병원 안 가고 자기네들끼리 만들어서 설사에도 먹고 한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서울대 통일의학센터 연구팀은 “특히 의료품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의약품 연구개발이 확대되고 있는 보건성과 연구소 등 북한 보건의료 관련 기관의 특성과 연계해 대북 보건의료지원·협력 채널의 다양화와 전문화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대북 보건의료지원 확대와 북한과의 보건의료분야 개발 협력 지평을 넓힐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북한 정권 차원에서도 보건의료체계 질적 수준에 내실화를 기하고, 남한과 국제 사회와의 대북 보건의료 협력과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응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 北 수재 모이는 평양의대…SCI급 논문 작성하고 홍콩서 교육

북한 의료인을 교육한 경험이 있는 신희영 서울대 통일의학센터 소장은 평양의대 의료진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수년전 서울대 소아과 교수 30명은 함께 북한으로 가 서울대 의대 가운을 입고 북한 환자를 진찰하기도 했다.

신희영 소장은 평양의학대학에 가서 교원 등 북한 의료인력을 직접 교육했다. 2008년 완공된 평양의대 소아병동도 우리나라가 지원한 것인데, 신 소장이 당시 소아병동 건립위원장이었다. 그는 어린이어깨동무재단과 함께 북한에 5개 병원을 지었으나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2009년부터 방문하지 못했다.

신희영 서울대 통일의학센터 소장이 2008년 10월 평양의대 소아병동 개원에 앞서 방북해 평양의대 의료진과 어린이 환자를 협진하고 있다.

신희영 서울대 통일의학센터 소장은 통일보건의료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북한 의료인의 능력 자체는 굉장히 높다"며 "책 한권을 던져 주고 30일 후에 가보면 이미 그 내용을 토대로 진료가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북한에서 평양의대 입학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북한이 2010년 5월 평양의대을 김일성대 단과대학으로 편입시키면서 평양의대에 대한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고 알려졌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과학기술 국제화·개혁 개방’이 가속화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서울대 통일의학센터에 따르면 김정은 시대 들어 대형병원 설립과 의학연구소, 의료품공장의 활발한 연구·생산 활동이 진행되고 있으며 국가 차원에서 주도해 국가조직인 보건성 조직체계 쇄신을 꾀하고 있다.

서울대 통일의학센터 소속 한 연구원은 “김정은 시대가 들어서면서 북한 연구진에게 SCI(Science Citation Index)급 논문을 쓰게 하고 있다”며 “국제정세가 나빴던 작년에도 평양의대 연구진들은 홍콩으로 나가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