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외과계 몰락은 이미 시작됐다. 수술할 의사가 없다.”

국내 외과계에 드리워진 위기감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대한민국 외과계의 몰락, 과연 돌파구는 없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국내 외과계의 불안한 현주소가 지적됐다.

‘외과’는 응급질환, 중증 환자 등 생명과 밀접한 영역으로 인체 장기를 다루는 의학 영역의 꽃으로 불리지만 국내에서 외과 의사 수는 점점 줄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대병원 외과 의료진이 수술을 하고 있는 모습.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소위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은 의료계, 특히 외과계에는 그림의 떡이다. 보건업은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주당 법정근로시간 단축도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도 높은 근무,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 의료사고 위험과 의료분쟁 가능성 등으로 인해 외과 전문의가 되겠다는 의사 수는 고갈 위기에 처해있다.

이는 결국 환자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다.

신재승 대한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이사(고려대의료원 교수)은 “지방 병원에서는 심장수술 팀을 꾸릴 수 조차 없는 현실”이라며 “결국 환자가 수도권 병원으로 오려다 중간에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이사는 “비싼 장비를 갖추고 있어도 인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장진우 대한신경외과학회 이사장(연세대의료원 교수)은 “수술할 의사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신경외과의 경우 ‘뇌(腦)’를 전문으로 하겠다는 전공의는 10%도 안 되고 90%가 척추 쪽을 택한다”고 밝혔다. 장 이사장은 “이는 여러분이 제주도 놀러가서 올레길을 걷다가 혹은 골프치다가 (뇌쪽에 이상이 생겨) 쓰러지면 그 중 절반은 사망해도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이라고 비유하며 심각성을 피력했다.

김형호 대한외과학회 총무이사(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3명 중 1명꼴로 암에 걸릴 것이며, 악성 종양의 80%를 외과 의사가 수술한다”며 “하지만 빠른 속도로 외과 전문의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 총무이사는 “이 추세라면 향후 10년 안에 외과의사를 수입하거나 수술을 받으러 외국으로 나가야할지도 모른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 수술할 의사가 없다…외과 계열 지원 기피

“교수님 생활을 보니 절대 그 과는 지원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방 소재 병원 외과계열 교수가 수련 중인 인턴에게 들은 말이다.

외과계 5개과의 경우 올해 1월 2018년도 전·후기 전공의(레지던트 1년차) 모집에서 전공의를 다 채우지 못하는 ‘미달’ 사태를 겪었다. 신경외과는 모집 정원의 93.4%, 산부인과는 77%, 외과 69%, 흉부외과 52%, 비뇨의학과 42%만 확보했다. 반면, 피부과, 소아청소년과, 성형외과 등은 모집 정원의 100%를 확보했다.

외과 영역의 전공의 지원 미달 사태는 꽤 오래됐다. 외과 계열 진료과목 특성 상 △수련 과정이 힘들고△의료사고 위험이 높아 소송 등 의료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부담이 크며△업무 강도에 비해 보상이 적은 외과계 수가 구조, △불안한 미래 등이 주 원인으로 꼽힌다.

김성호 대한신경외과학회 수련이사 발표 PPT 슬라이드 중 일부.

외과 지원 인력이 부족한 만큼 기존 남은 의료진은 잦은 야간근무, 강도 높은 업무 등 열악한 근무 환경을 호소하고 있다.

대한신경외과학회가 2017년 신경외과 전공의들의 피로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공의의 98%가 주 80시간 이상 근무했으며, 1주일 평균 104시간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임의와 교수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243명의 신경외과 전임의와 교수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9시간 이상 일한다는 비중이 94.3%이고 이 중 14시간 이상 일하는 비중이 76.2%에 달했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의 조사에서도 현재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주당 근무시간은 평균 76.1시간, 한달 평균 당직일수는 6.5일로 조사됐다.

분만을 포기하는 산부인과 의사 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저출산과 함께 분만사고 위험, 야간, 휴일이 보장되지 않은 특성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문영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장(제일병원)은 “출산율은 감소하고 있으나 고령 임신이 늘면서 분만의 위험도는 더 높은데다 야간과 휴일 분만이 절반 이상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며 “워라벨 얘기를 많이 하는데 산부인과와는 거리가 먼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김 회장은 “산부인과의 경우 남자 의사들이 많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인력난에 따른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전문의 수가 고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과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흉부외과 전문의 수급 전망에 관한 연구 결과, 현 추세로라면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2020년 351명, 2025년에는 804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흉부외과학회 회원들은 1952년~1992년생으로 구성돼있는데 이 중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1962년생~1965년생 전문의가 약 7~12년 안에 정년 퇴임을 할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이들의 후임 역할을 해야할 1985년 전후에 출생한 전문의 수가 거의 없다는 게 학회의 진단이다.

◇ 환자 안전 위협…적절한 보상 시스템 필요

이날 토론회에서 만난 복수의 외과 교수들은 “시대가 바뀌었다”며 “과거 우리는 맞으면서 일했지만 이제 그런 거 안 통한다. 적절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무환경 개선과 진료 공백을 위한 인력 지원이 필요하며, 특히 외과계 수가와 의료 환경에 대한 정책적·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오른쪽)가 권준식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 등 의료진과 함께 외상환자를 수술하고 있다.

김형호 대한외과학회 총무이사는 “‘내가 받는 보상이 적다’, ‘보상보다 일의 강도가 크다’고 생각하는 게 저조한 전공의 모집율의 근본 문제”라고 말했다. 대한외과학회는 외과 의사가 수행하는 수술은 원가의 76%만 보전받고, 수술을 하거나 환자를 보고 처치를 하는 것보다 검사를 내고 초음파, CT 등 고가의 검사를 해야 그나마 원가를 보전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외과 보전율이 90% 수준은 된다는 시각이다.

주관중 대한비뇨기과학회 보험정책단위원은 “비뇨의학에서는 수가 가산이 없다”며 “과목 특성 상 노동집약적이고 많은 장비와 시설, 치료재료가 필요한데, 상대가치 점수에 제대로 반영이 안되고 있다”며 “이런 현실은 병원 내 진료과의 낮은 수익성으로 이어지고, 결국 부족한 인력을 충원해주지 않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신재승 대한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이사는 “2009년에 신설된 가산금 사용의 실태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병원 수익으로 잡혔는지 가산금을 받지 못한 곳도 있다”고 밝혔다.

김우경 대한신경외과학회 총무이사는 “지금 50대, 60대의 전문의들을 위해 수가를 올려달라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앞으로 의료계를 이끌어나갈 후세대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라고 강하게 피력했다. 이어 김 총무이사는 “정부의 기계적인 전공의 정원 감축은 문제가 있다”며 “외과 특성을 고려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국종 대한외과학회 특임이사는 거듭 호소해도 바뀌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국종 특임이사는 “의료계, 외과 의사들은 블루칼라 즉, 노동자로 우리의 노동 현장은 핏빛으로 물들어져 있지만 정작 노동계를 대변한다는 국회 정당이 오히려 우리를 비판하고, 담당 정부 관료들은 자리를 이동해 다른 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외상센터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 교수는 "현재 전국에 17개 병원이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돼 운영 중이지만 당초 계획대로 운영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모든 센터에 대한 일률적인 지원을 중지하고 엄격한 평가를 통해 선별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당초 지역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않고 설립한 오류를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며 "소수의 거점 대형 외상센터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보건복지부는 외과계 목소리를 귀기울이며 지원책을 보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주말, 야간 수술·분만에 대한 의료 수가에 30% 가산을 적용될 예정”이라며 “학회별로 수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전공의에 대해서도 예산 지원 방안을 검토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