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노사가 비용절감을 통한 경영정상화 방안에 잠정합의했다. GM 본사가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23일 교섭에서 극적인 합의에 이르면서 한국GM은 법정관리를 피하고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노사의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투표를 통과할 경우 GM 본사와 정부는 한국GM에 경영정상화를 위한 추가 자금을 투입한다. 소형 스포츠유틸티차량(SUV)과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등 2종의 신차도 배정돼 단계적으로 양산을 시작한다.

지난 2월 군산공장 폐쇄 발표부터 노조의 사장실 무단 점거를 거쳐 극적 합의에 이르기까지 두 달여간 진행된 한국GM 사태를 ‘기승전결(起承轉結)’의 형식으로 정리했다.

◇ 기(起) : 군산공장 폐쇄로 GM 한국 철수 가능성 수면 위로

지난 2월 폐쇄 결정이 내려진 한국GM 군산공장 정문 전경

이번 한국GM 사태의 시작은 두 달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월 6일(현지시각) GM 본사의 메리 바라 회장이 투자분석가들과 가진 모임에서 “현재와 같은 구조로는 한국에서 더 이상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발언하면서, GM이 한국을 떠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1주일 뒤인 2월 13일 한국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GM의 한국 철수 가능성은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군산공장 폐쇄 결정 이후 국내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 차량의 판매가 급감하면서 한국GM의 실적은 더욱 악화됐다.

GM의 해외사업부문을 총괄하는 배리 엥글 사장은 한국을 찾아 정부와 산업은행 등에 보다 구체적인 협상안을 제시했다. 정부가 추가 지원에 나설 경우 한국에 소형 SUV와 CUV 등 2종의 신차를 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GM의 요구에 대해 정부와 산은은 “노사가 합의해 자구안을 제출하고 GM의 경영정상화 계획을 명확히 확인해야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 승(承) : 노조 “군산공장 폐쇄 철회” 요구에 GM은 “4월 20일 데드라인” 맞불

지난달 국회를 찾은 자리에서 물을 마시는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오른쪽)과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왼쪽)

2월 사측과 첫 만남을 가진 한국GM 노조는 지난달 15일 임단협 요구안을 발표했다. 기본급 동결과 올해 성과급을 포기하는 대신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철회하라는 요구가 핵심내용이었다.

노조는 이 밖에 1인당 3000만원 상당의 주식을 주고 사장을 제외한 전체 임원도 한국인으로만 선임할 것을 주장했다. 1400억원 규모의 강도높은 비용절감 방안을 추진하려는 사측에 맞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요구안을 던진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사측의 태도는 냉랭했다. 배리 엥글 사장은 지난달 27일 다시 한국을 찾아 부도 가능성을 언급하며 구체적인 협상 데드라인까지 제시했다.

그는 “현금이 고갈돼 협력업체들에게 줄 납품 대금과 희망퇴직 신청자에 대한 위로금 등을 주기 어렵게 됐다”며 “4월 20일까지 노조가 자구안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 전(轉) : 사장실 무단 점거 사태로 궁지 몰린 노조

지난 6일 사측의 성과급 지급 유보 결정에 항의해 사장실 집기를 때려부수는 한국GM 노조. 이날 노조의 행동은 CCTV에 담겨 조선일보 웹사이트에 생생하게 공개됐다.

노사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며 한국GM 사태는 급반전됐다.

지난 5일 사측이 현금 고갈을 이유로 6일로 예정된 성과급 지급을 유보하겠다고 통보하자, 노조 집행부는 카허 카젬 사장을 항의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흥분한 조합원 20여명은 집기를 파손하고 사장실을 무단 점거했다

사무실의 의자를 내던지고 화분을 발로 차는 노조의 이날 행동은 CCTV에 담겨 조선일보 웹사이트를 통해 생생하게 공개됐다. 노조에 대한 비난 여론이 크게 늘자, 그 동안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했던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부평 본사를 찾아 노사 양측에 신속한 합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노조가 하루만에 점거를 풀고 청와대 주변과 부평 본사 등에서 항의 집회를 이어갔지만, 악화된 여론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사측이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본사 임원의 한국 출장을 금지시키겠다며 압박하자 결국 노조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 결(結) : 한 차례 데드라인 연장 끝 극적인 잠정합의

군산공장 폐쇄 철회를 요구하며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집회를 진행 중인 한국GM 노조

이후 노사 협상은 빠른 속도로 진행됐지만, 양 측의 입장 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사측은 18일 교섭부터 군산공장의 남은 근로자 680명을 해고하지 않고 추가 희망퇴직과 일부 직원의 타 공장 전환배치, 무급휴직 신청 등을 담은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노조는 군산공장 직원들의 고용 보장과 신차 배정을 먼저 확정하고 자구안과 일괄적으로 타결하자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지루한 공방전 끝에 결국 데드라인이었던 20일 교섭에서도 노사는 잠정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교섭 결렬 직후 열린 이사회에서 사측은 법정관리 신청 결정을 안건에서 제외했다. 한국GM의 법정관리로 발생할 대규모 실직 사태 등을 우려한 정부가 뒤늦게 데드라인을 23일까지 늦춰줄 것을 요청한데 따른 것이었다.

한국GM 노사는 주말에도 집중 교섭을 벌였다. 배리 엥글 사장과 카허 카젬 사장, 임한택 금속노조 한국GM 지부장 등 협상 주체는 물론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과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더불어민주당 소속) 등도 참석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23일 새벽 5시부터 진행한 14차 교섭에서 노사는 11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를 벌인 끝에 결국 극적인 잠정합의안 마련에 합의했다.

한국GM 사태 주요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