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노사가 23일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을 우여곡절 끝에 잠정 합의함에 따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위기를 넘기게 됐다. 이에 따라 GM 본사와 정부, 산업은행이 한국GM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금지원 등을 두고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는 GM의 출자전환시 차등감자, 신차배정 확약, 외국인투자지역 승인, 소수주주권(비토권) 기능 확대 등이 꼽힌다. 이들 쟁점 사항이 어떤 식으로 정리되느냐에 따라 GM의 일방적인 한국시장 철수 시도에 대한 방어벽을 마련할 수 있는지, 한국GM의 독자생존을 얼마나 보장할 수 있는지 등이 결정된다.

정부 관계자는 "GM이 고용을 무기로 정부를 압박하고 일방적인 철수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협상 과정에서 안전장치 등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① GM 출자전환시 차등감자…"불발시 산은 지분 1%대로 축소...거부권 무력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왼쪽 두 번째)이 21일 오후 인천 한국GM 부평 공장을 찾아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세 번째),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왼쪽 네 번째),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왼쪽 다섯 번째)과 면담하고 있다.

GM은 한국GM에 빌려준 대출금 약 27억 달러(3조원)를 출자전환해 한국GM의 재무건전성을 재고하겠다고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에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한국GM 2대주주인 산은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GM 지분 17.02%는 1%대로 쪼그라든다.

한국GM의 정관상 특별결의사항은 보통주 85% 이상의 찬성이면 가결할 수 있다. GM이 출자전환 이후 마음만 먹으면 자산매각 등 특별결의를 어떠한 제약도 없이 할 수 있게 된다. 산은의 거부권 행사가 무력화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산은은 출자전환 이후 산은의 현재 지분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GM에 대해 20대1의 차등감자를 요구하고 있다. 산은은 이런 요구가 수용돼야 GM의 요구대로 현재의 지분율에 맞게 신규 자금 5000억~7000억원가량을 한국GM의 자본금으로 투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방식은 한국 정부가 강조하는 ‘대주주 책임론'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GM은 차등감자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아예 GM은 지난 3월 말 출자전환이 아닌 대출을 통해 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GM과 산은의 지분율을 건들지 않고 한국GM에 자금을 넣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산은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방안으로 보고 있다. GM은 기존에 밝힌 출자전환 외에 약 3조원 규모의 신규자금 투자도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GM 주장대로라면 한국GM에 6조원가량의 신규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GM이 핵심 생산 기지인 미국과 멕시코에 넣겠다고 밝힌 투자금액과 비교하면 글로벌 생산기지로서 매력을 잃은 한국GM에 6조원의 신규자금을 투입하기는 힘들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GM은 지난해 미국 시장에 39억 달러(4조10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북미시장 수출 물량을 대부분 생산하는 멕시코에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의 일정으로 약 50억 달러(5조3000억원)를 투입하고 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13일 기자단과 만나 "(차등감자에 대해 GM과) 협상해야 하는데 난항이 될 것"이라며 "GM 대출금을 출자전환하면 우리 지분이 굉장히 낮아지는데, 우리는 차등감자를 요구하고 저쪽은 차등감자에 난색을 표시하니까 (협상 과정에서)넘어야 할 산 중에 하나다"라고 말했다.

② 신차배정 확약…“SUV CUV 긍정 요인이나 구속력 갖춰야”

GM이 한국GM에 배정하겠다는 차량이 무엇인지도 한국GM 장기 생존을 위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GM은 지난 2월 부평공장에 스포츠유틸리티(SUV) 신차를, 창원공장에는 크로스오버유틸리티(CUV·다목적차량) 신차를 각각 배정하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이 연간 총 50만대 생산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선 GM이 배정하겠다고 약속한 SUV와 CUV 차종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GM에는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보고 있다. 한국GM 생산 차량은 가까운 중국과 러시아, 유럽 등으로 수출될 예정인데, 이들 현지에서 SUV와 CUV 차종은 상당히 좋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정부와 산은은 GM과 협상 과정에서 투자 확약서 등을 통해 신차배정에 구속력을 부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GM은 앞서 인도 시장 철수 때도 신차배정을 약속했지만, 막판에 이를 지키지 않고 떠났다. 정부는 GM의 글로벌 시장 재편 과정을 보면 구두약속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GM이 한국GM에 배정하겠다고 한 SUV와 CUV는 긍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며 "다만 GM의 약속이 실제로 이뤄질지는 미지수여서 GM 투자계획에 구속력을 부여할 방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③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조세회피처 논란 재점화?

9일 부평 본사에서 확성기를 틀고 선전전을 펼치며 출근하는 한국GM 노조

GM은 지난 12일 한국 정부에 한국GM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을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되면 처음 5년간 법인세 등이 100% 면제되고 이후 2년간 50% 감면된다.

한국GM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이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5년 내 5000만 달러 이상 투자로 공장 신설’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산업부는 GM이 신청서에 제시한 신차배정 계획이 해당 요건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만약 GM이 신차배정과 관련한 시설 투자를 공장 신설이 아닌 기존 생산 라인의 보수 및 변경으로 집행하면 기존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요건과 맞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존 공장 옆 부지에 새로운 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신설로 볼 수는 있지만, 한국GM 투자계획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은 세금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산업부는 세제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협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기재부가 유럽연합(EU)으로부터 조세비협조국(Tax Non-cooperative jurisdiction)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가 제외되는 과정에서 약속한 내외국인 투자기업 차별 해소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한국GM의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을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해 세제 혜택을 줄 경우 EU가 이를 문제삼을 수 있다. 이에 기재부는 한국GM 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전향적인 발언은 한국GM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의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관측이다. 김 경제부총리는 23일 "한국GM 노사 간 임단협이 타결되면 정부도 지원 협상에 나설 것"이라며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문제도 폭넓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도 “현재 법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은 현행법에 따라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며 “지정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EU와의 약속 때문에 지정을 일부러 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④ 비토권 부활...이전가격 등 불공정거래 해소

그동안 국회와 업계에선 한국GM 부실 원인을 두고 과도한 연구개발(R&D) 비용 부과, 이전가격 문제 등 GM 본사와의 불공정 거래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산은이 삼일회계법인을 통해 벌인 실사의 목적 중 하나도 이 문제를 명확히 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GM의 이전가격 문제는 GM 본사가 한국GM에 높은 가격에 부품을 팔고, 낮은 가격에 완성차를 사들여 이득을 챙겼다는 의혹이다.

다만 정부와 산은은 실사 과정에서 GM과의 투자 논의가 일정 부분 구체화하기 시작하면서 실사의 초점을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에 두기로 했다. 과거 부실 원인을 규명하는데 힘을 쏟기보다는 GM이 제시한 자구안의 구체성과 현실가능성을 검증해 한국GM의 정상화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이라는 판단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GM 부실의 가장 큰 원인은 판매부진으로 보인다”며 “GM과의 불공정한 거래 관계는 개선돼야 하지만 이 부분을 실사로 명확히 밝히기는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산은이 지난 2002년 한국GM 전신인 대우자동차를 GM에 매각할 때 얻어낸 비토권(거부권)의 부활도 이번 협상에서 쟁점이다. 산은은 비토권을 통해 한국GM 철수를 간접적으로 막아왔지만 비토권의 기간인 15년은 지난해 10월 종료됐다. 실제로 산은은 지난해 GM이 한국GM에 대출을 집행하면서 부평공장을 담보로 잡으려 했을 때 비토권으로 이를 막았다. 비토권 행사 항목은 자산매각, 법정관리 등 17개다.

정부 관계자는 “비토권이 부활하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게 되는 셈”이라며 “(부활) 가능성 유무를 떠나 협상 안건에 올려 협상 카드로 내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