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배당 사고에도 불구하고 삼성증권(016360)이 리테일(개인) 영업 부문에서는 타격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증권 고객 중 1억원 이상을 맡긴 고액자산가가 10만여명으로 증권사 중 가장 많다. 이런 두터운 고액자산가 덕분에 삼성증권이 위기 상황에서도 선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1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인기몰이 중인 코스닥벤처펀드와 관련, 삼성증권의 판매량이 경쟁사들을 압도하는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2일 기준 사모는 1456억원, 공모는 988억원 팔렸다. 총 판매액 2444억원은 전체 판매 규모(8368억원)의 29.2%에 달한다. 경쟁사이자 증권업계 1위인 미래에셋대우의 판매량은 847억원(13일 기준)이다. 삼성 내부에서도 "생각보다 잘 되고 있다"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삼성증권 삼성타운금융센터 전경

◇ "이제부터라도 잘하라고 고객이 격려"…리테일 영업 실적 예상밖 호조

코스닥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코스닥벤처펀드의 가입 고객은 10% 소득공제 혜택(최대 300만원)을 받는다. 이 펀드는 전체 포트폴리오의 50%를 벤처기업과 코스닥 상장사에 투자한다. 지난 5일 출시 이후 8368억원(12일 기준)의 자금이 몰렸다. 공모 펀드 판매금액은 1661억원, 사모 펀드 판매금액은 6706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증권은 배당사고 여파로 거래관리 시스템의 불안정성이 부각돼 코스닥벤처펀드 판매에서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현재까지 예상 밖의 실적을 거뒀다.

삼성증권 판매량이 돋보이는 이유는 고액자산가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1억원 이상을 맡긴 고객이 10만여명으로 증권사 중 가장 많고, 이들의 평균 투자액은 10억원에 이른다. 10만여명이 100조원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금 3000만원까지만 소득공제가 되다 보니 자산가 중 일부는 사모가 아닌 공모에 3000만원만 맞춰 넣고 있다"면서 "3000만원이라는 투자금 또한 일반 투자자들에겐 부담스러운 규모이기 때문에 자산가 비중이 높은 삼성증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삼성증권 한 관계자는 "코스닥벤처펀드는 적립식보다는 거치식(한 번에 목돈을 맡기는 것)이 유리한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이 때문에 목돈을 넣는 투자자가 많다"고 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삼성증권의 지난해 자산관리수익은 960억원을 기록해 전체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4%에 달했다. 다른 대형 증권사들의 경우 이 비율이 10~20% 정도다.

한 증권사 사장은 "삼성증권은 삼성그룹에 속해 있다 보니 계열사 IB 일감에선 대표 주관사를 맡을 수 없고, 다른 대기업 계열사 일감도 따내지 못하는 편"이라며 "딱 하나 자산관리에서 강점이 있는 회사"라고 설명했다.

삼성증권의 판매 호조에 대해 삼성 내부에서도 놀란 분위기다. 한 프라이빗뱅커(PB)는 "어수선한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고객들이 찾아줘 감사하다"면서 "주요 고객은 '앞으로는 사고 없도록 해달라'고 도리어 격려해주고 있다"고 했다. 다른 한 삼성증권 직원은 "마케팅을 전혀 못하는 국면 등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준인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최근 주가연계증권(ELS) 판매량만 봐도 고객 이탈은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9~12일 신규 발행된 삼성증권 ELS는 194종이다. 12일 기준 삼성증권의 ELS 발행잔액은 공모 기준 4조4452억원으로 전주대비 5.2%가량 늘었다. 경쟁사인 NH투자증권과 KB증권, 미래에셋대우의 발행잔액이 줄었거나, 늘었어도 삼성증권의 증가율보다 적었던 점을 감안하면 선방했다. 다만 삼성증권 사모 ELS 발행잔액은 1조6457억원으로 전주대비 소폭 감소했다.

금융위원회는 김용범 부위원장 주재로 지난 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삼성증권 배당 사고 관련 회의를 열었다.

증권업종을 담당하는 김고은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증권이 배당 사고로 수수료 비용 등이 발생했으나 이는 단기 이슈로 판단한다"고 했다. 원재웅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브랜드 가치 훼손이 아쉽다"면서도 "단순 사고이기 때문에 현재 하락 국면은 매수 기회"라고 분석했다.

◇ 기관 일감 줄어들 듯…신용등급 강등 가능성도 우려 요인

문제는 자산관리(WM)가 아닌 다른 부문이다. 일단 외부 일감이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 12일 삼성증권과 KTB네트워크가 공동 설립한 삼성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는 상장을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스팩은 증시에 상장하는 페이퍼 컴퍼니로, 장외 우량기업을 찾아 합병해 수익을 내는 기업이다. 삼성증권은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상장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삼성증권은 이외에도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거래 중단 통보 등 악재를 맞고 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도 각각 외화채권매매 중개, 국고채 전문딜러 자격 박탈 여부를 논의키로 했다.

또 하나 우려되는 요인은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삼성증권에 대해 장기신용등급 AA+과 안정적 등급 전망은 유지했지만 "금융당국 징계와 평판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고객 기반 훼손과 소송에 따른 수익성, 상환 능력 저하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나이스신용평가가 당장 삼성증권 신용등급을 내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만에 하나 강등이 현실화되면 주가연계증권(ELS) 판매 등에서 불리하다. ELS는 기본적으로 기초자산 가격이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증권사 보증으로 발행되는 상품이라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율이 떨어지는 등 악영향이 생길 수 있다. 발행어음 인가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는 것도 부담이다. 삼성증권 한 관계자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