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부총리 “라가르드 IMF 총재 만나 외환시장 개입 정보 공개 논의”

정부가 우려했던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했다. 미 재무부는 13일(현지시각) 발표한 ‘주요 교역 상대국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한국을 지난해와 같은 ‘관찰 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분류했다. 이제 관심은 미 정부가 압박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정보 공개에 쏠리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만나 외환시장 개입 정보 공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쟁점은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정보가 얼마나 자주, 어떤 방식으로 공개되는지다. 구체적인 방안은 논의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전문가들은 2015년 11월 발표된 다자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환율 합의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TPP 참여를 재검토하라고 발표하면서 TPP 환율 합의가 한미 환율 합의에도 지침, 표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수출 기업의 채산성(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 대비 원화 가치를 절하(환율 상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원·달러 환율에 쏠림현상이 발생할 때 미세조정(smooth operation)하는 수준이라고 맞서고 있다.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정보가 공개되면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 자체에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어 원화 가치의 절상(환율 하락)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개입 정보 공개 주기, 개입 물량을 순매수(순매도)로 공개할 것인지 총액으로 할 것인지 등 외환시장 개입 정보의 공개 방식에 따라 환율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 입장에선 공개 주기가 길수록, 개입 물량 공개 방식은 환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달러를 매수하는 금액만 공개하는 것보다 매수와 매도를 합친 순액이면 부담이 덜할 수 있다.

◇ TPP 공동선언 “외환 개입, 분기별로 순매수·순매도 모두 공개”

2015년 TPP 협정이 체결되면서 작성된 ‘TPP 회원국 거시정책당국의 공동선언’에는 환율 합의가 포함돼 있다. 외환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 상황을 ‘분기별’로 공표하고, 외환보유액, 자본 유출입, 수출입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공개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또 매년 각국 담당자가 만나 환율 정책을 논의하고 부당한 외환개입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 등을 평가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내용이 명시됐다.

김동연 부총리를 만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특히 공동선언 부속서에 나온 ‘개입’ 정의에는 현물과 선물시장에서 외환을 매수하거나 매도하는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자국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순매수하는 개입뿐 아니라 급격한 통화 가치 절하를 제어하기 위한 순매도 개입도 외환시장 개입 정보 공개에 포함한다는 의미다.

다만 외환시장 개입 정보를 공개하는 주기와 방식에 예외조항도 마련돼 있다. 당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베트남은 외환시장 개입 정보를 처음 공개하는 것을 고려해 분기가 아니라 반기 단위로 순매수 규모만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정부도 TPP 협의를 고려해 우리에게 적합한 공개 방식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TPP 공동선언에 명시된 환율 합의는 강제력이 없다. 당시 미국 의회는 환율 합의를 지키지 않는 국가에 대해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처벌 규정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환율 협의를 이행하지 않는 데 대한 제재 조항은 협정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 美 TPP 복귀 검토…韓 상반기 가입 여부 결정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 정보 공개를 결정하기에 앞서 다자무역협정인 TPP에 주목하는 것은 미국이 다시 TPP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졌고, 우리나라 역시 TPP 가입을 저울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12개국이 참여할 예정이었던 TPP는 미국 주도로 이뤄졌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취임 직후 TPP 탈퇴를 공식 선언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후 일본 주도로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이 TPP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바꿔 타결했다.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이 참여한 CPTPP.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다시 TPP 복귀 검토를 지시하면서 미국의 TPP 참여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CPTPP는 특허와 의약품 등 미국의 입장이 대거 반영된 일부 항목만 적용을 유예하고, 환율을 포함한 나머지 항목은 기존 TPP 협정문을 그대로 가져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TPP 복귀 검토를 지시하면서 “물론 우리 방식대로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내용이 일부 바뀔 가능성은 있다.

한국도 곧 CPTPP 가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 12일 “상반기 중 CPTPP 가입 여부에 대한 부처 간 합의를 도출한다면 하반기 통상절차법상 국내 절차를 개시해 적절한 시기에 가입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초 한국은 TPP에 가입하면 대일(對日) 무역 적자가 심화될 수 있고, TPP 참여국 중 일본·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와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어 실익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공을 들였다. 그런데 미·중 간 무역전쟁이 심화되고 미국이 TPP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TPP 가입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