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의 내성 표적 폐암신약 ‘올리타(성분명 올무티닙)’ 개발 중단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많다. 기술을 이전받은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과 중국 자이랩이 잇따라 개발 권리를 반납한 데 이어 경쟁 약품인 ‘타그리소’가 글로벌 신약으로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면서 이미 시장에서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올리타 개발 중단은 글로벌 신약 개발·상용화라는 높은 벽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미약품은 “올리타 개발 중단과는 무관하게 ‘글로벌 톱 클래스’에 도전하고 있는 다른 신약 임상에 더욱 집중해 반드시 ‘글로벌 혁신신약 상용화’를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 기술수출과 반환·늑장공시...‘애증의 신약’ 역사 뒤안길로

올리타(성분명 올무티닙)는 폐암 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의 변이를 억제해 기존 폐암 치료제 투약 후 나타나는 내성과 부작용을 없앤 3세대 내성 표적 폐암 신약이다. 후보물질 도출 시점부터 개발 기간만 약 10여년이다. 개발 비용은 베링거인겔하임과 자이랩에 기술 수출하면서 받은 계약금 약 700억원으로 그동안 투입된 R&D 비용은 회수된 것으로 분석된다.

올리타 개발 과정은 한미약품뿐 아니라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애증의 신약’이다. 2015년 7월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한미약품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계약으로 한미약품은 계약금 5000만달러(약 600억원)를 받았고 임상시험, 판매 허가 등에 성공할 경우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으로 6억8000만달러(약 8000억원)를 받기로 했다.

올리타는 2016년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신속 심사 제도’를 통해 국내에서 판매 허가를 받았다. 신속 심사 제도란 대체 치료제가 없는 경우 임상2상에서의 안전성과 효능이 확인된 혁신 신약에 대해 판매를 먼저 허용하고 임상3상 결과를 나중에 제출하도록 한 제도다.

한미약품이 2016년 10월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올무티닙(HM61713)’에 대한 임상 실패 관련 기자 간담회를 진행한 모습. 당시 이관순 사장(왼쪽부터)과 손지웅 연구개발(R&D) 총괄 부사장, 김재식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이 참석했다.

그러나 2016년 9월 베링거인겔하임이 올무티닙 임상시험 개발을 중단하기로 하고 개발 권리를 한미약품에 반환하면서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 가능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게다가 임상 실패와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 베링거인겔하임의 권리 반환 늑장 공시 논란이 불거지며 한미약품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올리타 개발을 전격 중단하면서 한미약품의 신약 파이프라인 중 불확실성 하나가 해소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 경쟁약품 진입으로 시장성 잃어...다시 절감한 글로벌 신약 높은 벽

한미약품은 13일 올리타 개발 중단 소식을 전하며 “현재 올리타와 경쟁 관계에 있는 제품이 전세계 40여개 국가에서 시판 허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환자에게 투약되고 있고 국내에서는 경쟁 약품이 작년 말 건강보험 급여를 받으면서 올리타 임상 3상이 더욱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경쟁약품인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는 작년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약가 협상이 타결됐다. 이에 따라 신속 허가 제도로 국내에 판매되고 있는 올리타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특히 타그리소가 판매 승인 및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게 되면서 현실적으로 임상3상 진행이 불가능해졌다. 올무티닙은 치료 대안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3상을 진행해야 하는데 타그리소 판매로 말기 폐암 환자 치료제가 생겨 신속 허가 제도도, 임상3상도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중국 파트너 업체였던 자이랩도 올무티닙 개발 권리를 반환하며 마지막 보루였던 중국 시장에서의 임상3상도 불투명해졌다.

한미약품은 “향후 개발에 투입된 R&D 비용 대비 신약 가치의 하락이 확실하다는 판단에 따라 개발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올리타(사진) 개발 중단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아무리 우수한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해도 빠른 글로벌 임상과 시장 진입을 하지 못하면 혁신 신약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진다는 교훈을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이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지 새삼 일깨워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또 “임상 환자를 구하지 못해 개발이 중단됐다는 점에서 전체 보건의료계의 지원과 도움, 관심이 필요하다”며 “개별 기업 의지와 투자 차원에 맡겨놓을 게 아니라 정부의 체계적인 정책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