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과거 피감기관 돈으로 외유(外遊)성 출장을 다닌 사실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김 원장이 포스코청암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7년에 1년간 해외연수를 다녀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원장 측과 포스코는 관련 사실을 부인했지만, 의혹을 제기한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연수비용의 상세 내역을 당장 공개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국내 1위, 세계 5위(2016년 조강 생산능력 기준) 철강업체인 포스코는 국내에서 정치 스캔들이 터지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민영화된 옛 공기업의 특성상 주인이 없다 보니 외풍(外風)에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포스코의 지배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포스코 빌딩.

◇ 정치스캔들 끊이지 않는 포스코

포스코는 2000년 10월 4일 마지막 정부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하면서 완전 민영화됐다. 공기업일 때도 그랬지만, 포스코는 민영화가 되고 나서도 외압이 끊이지 않았다. ‘철강왕’으로 불리던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조차 2002년 5월 “내가 25년 동안 재직하며 외압을 단절하느라 병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전 명예회장이 2000년 5월 총리직에서 물러나자 포스코 흔들기는 더 심해졌다. 포스코는 민영화 직후였던 2002년 이른바 ‘최규선 비리’에 연루됐다. 포스코 계열사는 2001년 4월 최규선씨 등이 갖고 있던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TPI) 주식 20만주를 시가보다 비싼 주당 3만5000원에 매입했다. 최씨는 주당 1만원대에 이 주식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가 이 주식을 산 이유는 최 씨의 대미활동 성공 사례비 명목으로 전해졌다.

5대 포스코 회장이었던 유상부 회장은 포스코 계열사가 타이거풀스 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유 전 회장은 이즈음 최규선씨 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홍걸씨와 만나기도 했다. 유 전 회장은 2008년에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6대 회장인 이구택 전 회장은 임기가 약 1년 2개월 남은 2009년 1월 물러났다.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이주성 전 국세청장에게 로비를 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직후였다. 민영화 전인 1990년대에 포스코를 이끌었던 황경로 전 회장(2대)과 김만제 전 회장(4대)도 각각 뇌물수수 혐의,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바 있다.

◇ 외풍에 휩쓸려 ‘잃어버린 5년’

이구택 전 회장의 후임으로 취임한 정준양 전 회장(7대)은 2009년 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약 5년간 회장직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1년 뒤에 회장직에 올라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뒤에 물러난 정 전 회장은 임기 대부분이 이명박 정부와 겹친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정 전 회장 재임 기간을 ‘잃어버린 5년’이라고 부른다. 자원개발, 신소재 등으로 사업 영역은 넓혔지만 부채 비율은 2009년 58.7%에서 2014년 88.3%로 올랐고 영업이익률은 이 기간에 10.6%에서 4.9%로 줄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매긴 포스코 신용등급도 강등했다.

정 전 회장은 선임 때부터 잡음이 일었다. 정 전 회장과 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은 “박영준 차관과 천신일 세중나모(현 세중) 회장이 회장 후보를 포기하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천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려대 61학번 동기로 측근이다. 박 전 차관도 이명박 정부에서 ‘왕차관’으로 불렸던 사람이다. 박 전 차관과 천 회장은 당시 외압 의혹을 부인했다.

정 전 회장은 성진지오텍 등 부실기업을 무리하게 인수해 포스코에 약 1592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이명박 정부 실세들의 도움으로 회장이 됐기 때문에 이 빚을 갚기 위해 부실기업을 비싼 값에 사줬다는 의혹이 일었다. 정 전 회장은 배임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 2015년 9월 9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검찰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 親정권 사외이사, 바람막이로 활용

재계에서는 포스코가 외풍을 막기 위해 친(親)정권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바람막이로 활용한다고 보고 있다. 또 포스코 회장은 형식적으로는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CEO 후보추천위원회가 선정하기 때문에 현직 회장이 연임을 위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포스코는 최근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김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수석실에서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내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외압을 차단하기 위해 친정권 인사를 영입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권 회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문 대통령의 해외 방문에 한번도 동참하지 못했다.

포스코 사외이사는 과거에도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포스코 사외이사를 지낸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도 이런 비판을 받았다. 안 예비후보는 정준양 전 회장 재임 기간에도 사외이사를 했는데, 포스코의 부실기업 인수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특히 포스코가 성진지오텍을 인수했던 2010년 4월에는 포스코 이사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안 예비후보는 “회계법인의 경영진단이나 경영진 의사 결정의 절차상 문제를 다 들여다봤다.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2016년 11월 11일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 “지배구조 바꿔 외압 차단해야”

포스코가 외압에 취약한 이유는 사실상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작년 말 기준 포스코의 최대주주는 지분 11.08%를 가진 국민연금공단이다. 포스코 지분의 64.26%는 소액주주가 들고 있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주주가 없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과 가까운 ‘낙하산’이 내려오거나 현직 회장이 본인의 연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셀프 연임’이 반복되고 있다. 대리인(CEO)이 주인(주주)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추구하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가 발생하는 것이다.

2014년 3월 취임한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작년 3월에 연임했다.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포스코의 CEO 추천위원회는 현직 회장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연임 의사를 묻고, 현직 회장이 연임 의사를 밝히면 그를 대상으로 심사한다. 현직 회장은 사외이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와 방법이 많아 다른 후보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전문가들은 민영화된 옛 공기업의 CEO 선임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이들 기업의 소유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용 연세대 교수는 “(민영화된 옛 공기업들은) 대주주가 없고 소유가 분산돼 있어 CEO 선임 과정에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포스코나 KT와 같은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각하거나 전환사채 발행 및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 5% 안팎을 가진 과점주주를 만든 뒤 과점주주에 공동경영을 맡기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