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차기 이사장을 뽑으려는 직접판매공제조합(직판조합)에 공문을 보내 임원추천위원회 구성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공정위가 민간 단체에 낙하산을 내려보내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직판조합은 암웨이 등 다단계 회사 51곳이 가입한 사단법인으로 다단계 피해를 보상하는 소비자 피해 보상 기관이다. 공정위 소관인 방문판매법에 따라 설립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공정위 감독을 받는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직판조합은 지난달 28일 임원추천위를 구성하기 위해 이사회를 열었다. 현 이사장 임기가 5월로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이사회에선 전날 공정위가 보낸 공문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공정위가 '소비자원(공정위 산하기관), 변호사협회, 경영학회 등 세 곳의 추천을 받아 임원추천위를 구성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이다.

직판조합 일부 이사는 이에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조합은 다단계 회사들의 민간 단체인데 공정위가 임원추천위 구성까지 간섭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사실상 이사회의 추천권을 박탈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공정위 산하기관인 소비자원 추천 인사를 참여시키라는 것은 결국 공정위 출신을 이사장으로 앉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미 공정위 국장을 지낸 인사가 이사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다"고 했다.

조합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런 공문을 받은 적이 없어 당황스럽다"며 "일단 공정위 공문에 따르지 않고, 공정위 진의부터 파악해본 뒤 다시 이사회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문 하나에 감독 기관의 진의까지 확인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직판조합의 역대 이사장은 '공정위 낙하산'이 많았다. 설립 초기 암웨이 대표가 맡았던 1대 이사장을 제외하면 2~5대 이사장이 전부 공정위 출신이었다.

이런 상황은 직판조합뿐만이 아니다. 공정위가 설립 인가권을 가진 공제조합(직접판매공제조합,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한국상조공제조합, 상조보증공제조합) 네 곳의 이사장을 공정위 출신이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 네 곳은 공정위 산하기관도 아니고 정부 지원을 받는 곳도 아닌데 '공정위 전관(前官)'들이 장악하는 것이다. 모두 임기 2~3년에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자리다.

다단계 회사 92곳을 회원으로 둔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특판조합)은 작년 10월 이사장 선임 과정에서 잡음이 나왔다. 공정위 국장 출신인 유재운 법무 법인 바른 상임고문이 이사장으로 선임됐는데 임원추천위에 같은 법무 법인 소속 변호사와 공정위 추천 인사가 포함돼 있어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서울 한 대학 A 교수(경영학)는 "자기들이 감독해야 할 업계에 공정위 전관들이 방패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며 "공정위가 감독 기관으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특판조합 이사장 선임 과정에서 논란이 있어 외부 전문 기관의 추천을 받아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사장을 뽑자는 의미"라며 "이사장 선임 과정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