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인천 부평의 한국GM 본사. 오후가 되자 회사 관계자들의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3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과 노조 집행부를 만나기 위해 이 곳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백 장관의 한국GM 방문은 당초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그는 지난 2월 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한 후 약 두 달간 구조조정과 임금 단체협상에서 극심한 진통을 겪는 상황에서 단 한 차례도 한국GM 본사를 찾지 않았다.
장관의 회사 방문 하루 전인 지난 5일 노조는 카젬 사장을 찾아와 성과급 지급유보 결정에 강하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사장실 집기를 부수고 이튿날인 6일 오후까지 하루 넘게 사장실을 점거했다.
의자를 집어던지고 화분을 발로 차는 등 난동에 가까웠던 한국GM 노조의 모습은 사장실에 설치된 CCTV 영상에 담겨 이날 조선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고스란히 공개됐다. 이로 인해 크게 악화된 국민여론을 의식해 그 동안 한국GM 사태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백 장관이 모처럼 발걸음을 옮긴 것이었다.
장관이 도착하기 전 한국GM 관계자는 "노조의 폭거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장관이 이번 방문에서 노사교섭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는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사까지 찾아와 사장과 가진 면담에서 백 장관은 지금껏 해오던대로 원론적인 입장만을 되풀이한 채 자리를 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카젬 사장에게 "노조 설득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주문만 했을 뿐 회사가 원하는 '적극적인 중재자'의 역할은 전혀 하지 않았다.
뒤이어 노조 집행부와 만난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백 장관은 집행부에 "모든 쟁의는 법 테두리 안에서 해야한다"는 형식적인 당부만 했다. 사장실 점거와 집기 훼손 등 위법 행위에 대한 강한 경고는 없었다. 오히려 "GM의 장기 투자계획을 받아보고 고용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달래는데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국가 산업 발전을 책임지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방문이었지만, 한국GM 사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실마리도 제시하지 못한 헛된 이벤트로 끝났다. 사장실 점거와 집기 훼손이 알려지면서 궁지에 몰렸던 노조는 장관과의 면담 이후 오히려 더욱 기세등등한 태도로 바뀌었다.
한국GM 노조는 9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부평공장에서 철야농성을 벌이는 등 투쟁의 강도를 더욱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사태 해결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주무부처 장관의 '방관자' 행태는 위법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노조에게 힘만 실어준 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