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림축산식품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올해 도입한 '쌀 생산 조정 제도'가 농가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제도는 쌀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콩·옥수수 등 다른 작물로 옮겨갈 경우 논 1㏊당 340만원씩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총 3400억원을 들여 올해와 내년 각각 5만㏊씩 총 10만㏊의 논을 밭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오는 20일이 마감일이지만 5일까지 농가가 품종 전환을 신청한 논 면적은 목표치의 40%인 약 2만㏊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 사이에선 "지난해 정부가 쌀 가격을 올리겠다며 쌀을 대량으로 사들일 때부터 생산조정제 실패는 예견됐던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쌀 가격을 정부가 지지해주면서 쌀농사를 짓지 말라고 하는 것은 공염불(空念佛)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대량으로 쌀 매입해 쌀값 지탱

우리나라는 쌀 소비량이 줄면서 만성적인 쌀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8㎏으로 30년 전(1988년·122.2㎏)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쌀 생산량 역시 2015년 433만t, 2016년 420만t, 2017년 397만t으로 서서히 줄어들고 있으나 적정 수요량(370만t)보다는 훨씬 많은 상황이다.

정부는 쌀값이 떨어지지 않도록 시장에 풀리는 쌀을 대량으로 매입해 시장과 격리시키는 정책을 쓰고 있다. 과거엔 2~3년에 한 번씩 정부가 쌀을 매입했지만 최근엔 쌀 공급과잉이 만성화되면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쌀을 대거 사들였다. 이 기간에 정부가 사들인 쌀은 총 126만6000t으로, 들어간 비용은 약 2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쌀 공급과잉으로 지난해 중순 쌀값이 한 가마(80㎏)당 12만6000원대로 떨어지자 정부는 쌀 37만t을 사들였다. 그 결과, 쌀값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산지 쌀값은 한 가마당 17만356원을 기록, 9개월 만에 34.3% 상승했다. 농업 관계자들은 쌀 생산조정제가 외면받고 있는 것은 정부가 과도하게 쌀을 사들여 쌀값을 급격히 올려놨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쌀값이 뛰고 있는데 농가로선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른 작물로 갈아탈 경제적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쌀값을 지탱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세금을 쓰고, 다른 쪽에서는 '쌀농사 짓지 말라'며 세금을 쓰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 최소화해야

농촌경제 전문가들은 정부가 임의로 시장에 개입해 쌀 수급을 조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대표적인 민간 농업연구소인 GS&J 이정환 이사장은 "쌀 수급 균형의 해답은 결국 시장에서 형성되는 균형 가격에 있다. 정부는 보조적인 역할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쌀을 사들여 쌀값을 높이려 하지 말고, 수요와 공급이 자연스레 균형을 이루도록 시장에 맡기는 대신 줄어든 농가 소득은 직불금 형태로 일부 보조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정부가 쌀을 사들여 가격을 지탱하는 것은 시장에 왜곡을 불러일으킬뿐더러 농가가 계속 쌀을 짓도록 하는 유인이 된다"며 "미국과 EU 등 다른 선진국에서도 1990년대에 모두 없어진 제도"라고 말했다.

김태훈 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쌀이 대량 생산될 경우 쌀값 유지를 위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려면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최근엔 풍년만 들면 쌀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게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쌀 생산조정제 역시 지금처럼 보조금을 주면서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는 것보다 기술 개발이나 판로 개선을 통해 다른 작물의 수익성을 높여 농민 스스로 옮겨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