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특유의 삼성 견제 심리가 발동

현대·기아차가 삼성이 하는 전장(電裝)부품 사업에 견제구를 날렸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출시한 신차 대부분에서 삼성의 계열사인 오디오 전문그룹 하만 카돈(Harman Kardon) 사운드 시스템을 빼고, 크렐(KRELL) 사운드 시스템을 장착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에서 올해 출시한 신차 7개 차중 하만 사운드 시스템을 장착한 차량은 2개 차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005930)가 지난해 3월 하만을 인수하고 전장산업 진출을 본격화하자, 신차의 사운드 시스템을 경쟁사 제품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하만은 렉시콘, 마크레빈슨, JBL, 하만카돈, AKG, 레벨 등 다수의 오디오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005380)와 기아차는 전부터 준중형급(아반떼 등)부터 일반 사운드 시스템 외에 JBL 사운드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왔다.

올해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차종인 K5와 카니발의 경우 이전 모델에는 하만의 JBL 브랜드 사운드 시스템을 옵션으로 장착했으나, 올해부터는 미국 크렐사 사운드 시스템으로 바꿨다.

신형 싼타페의 사운드 시스템도 JBL에서 크렐 사운드 시스템으로 교체했다. 수소전기차 넥쏘와 신형 K3에도 고급 트림에 크렐 제품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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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의 프래그십(기업의 기술이 집약된 제품) 세단인 신형 K9에는 크렐 사운드 시스템으로 기본 옵션으로 넣고, 최고급 트림에만 하만의 렉시콘 시스템을 장착했다. 1세대 K9에도 최고급 트림에는 렉시콘 시스템이 장착됐었다.

하만 사운드 시스템을 새로 장착한 올해 신차는 벨로스터가 유일하다. 1세대 벨로스터는 비트 오디오 시스템이 장착됐으나, 올해 출시한 신차에는 JBL 사운드 시스템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2016년 K7 차량부터 크렐 사운드 시스템이 탑재됐다”며 “신차에 크렐 오디오 탑재는 수년 전부터 협의해서 진행하고 있던 사항”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 특유의 삼성 견제 심리가 발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금까지 현대차가 만든 차량에는 삼성 반도체가 단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삼성이 1990년대 말 자동차 시장에 진출했다가 실패한 뒤 이런 어색한 관계가 계속됐다. 특히 지난 2015년 삼성전자가 자동차 전장사업 진출 선언하고, 지난해 하만을 인수하자 이 같은 견제 심리가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는 아직도 삼성이 완성차나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자율주행이나 커넥티드카 분야에서는 협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현대차는 여전히 국내 부품사나 기업들을 견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디오업계 한 관계자는 “하만은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를 거느린 곳으로, 글로벌 시장점유율 41%를 차지한다”며 “제품에 특별한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단지 삼성이 인수했다고 현대차가 이렇게 견제하는 것은 글로벌 기업답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전장 사업을 본격화하고 오디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3월 9조3700억원을 들여 하만을 전격 인수했다.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를 통해 연평균 9% 고속 성장하는 커넥티드카용 전장 시장에서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