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협력 통해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는 모습 세계에 보여주자"
미중 무역 전쟁 터지면 韓 양국 사이에 낀 '넛크래커' 신세될 수도

중국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을 계기로 한국에 통상 분야 협력을 강화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함께 대응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서로 이익이 되는 시장을 개방해 무역 시장 우위를 점하자는 내용이다.

한국 정부는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으로 경색됐던 한중 관계가 완연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중국과의 통상 협력을 도모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하는 데는 주춤한 모양새다. 한국 정부는 철강 관세 부과 대상에서 면제되기 위해 통상·외교라인을 총동원해 미국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인 터라 중국을 겨냥해 대규모 관세 부과 조치를 준비하는 미국측 심기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무역전쟁이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양국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못하는 '넛크래커'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넛크래커는 한 나라가 상대 우위에 있는 두 나라 사이 끼여 주도적인 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호두를 양쪽에서 눌러 까는 호두까기 기계에 빗댄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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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보호무역주의 공동 대응" 강조…韓 "협상 업그레이드 하자" 미지근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부터 23일까지 이틀 동안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제1차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을 진행한다. 제2의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막고 중국의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기 위한 협상이다. 이번 후속 협상은 지난 2015년 12월 발효됐던 한·중 FTA를 보다 고도화해 양국 경제 협력 및 통상 관계를 제도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중 양국은 FTA 체결 당시 제한적인 방식으로 서비스·투자 시장을 우선 개방하고, 2년 이내에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목표로 후속 협상을 열기로 합의한 바 있다. 1차 협상인 만큼 양국의 관심 분야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협상 범위와 향후 협상 진행 시 기본 원칙을 정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중국측은 협상을 시작하면서 한국에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중국측 협상 수석 대표로 참석한 왕셔우원 중국 상무부 부부장은 "현재 세계 무역의 성장 회복세는 많이 약해지고, 보호무역주의 추세는 확산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의 주요 경제 국가인 한국과 중국이 (한·중 FTA 후속 협상을 통해) 시장 개방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과 중국이 협력해 보호무역주의에 대항하고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무역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 세계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중국과 협력 관계임을 세계에 공표해야 하고,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에 일종의 집합체로서 대응하자는 뜻이다.

왕 부부장은 "중국이 네거티브 방식(개방 제외 분야만 열거)으로 FTA 협상을 진행하는 국가로는 한국이 처음이다"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시장 개방을 위한 포괄적이고 심화한 규제 개혁을 추구하려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제1차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이 개최됐다. 양국은 향후 협상에서 논의될 각국 관심사항과 기본원칙 등을 협의했다.

이같은 중국측 태도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중국측이 이렇게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하고 나올 줄을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당혹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기조에 중국이 상당히 수세에 몰리면서 대외적인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바꾼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중국측 메시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주지 않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국측 협상 수석대표로 참석한 김영삼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후속 협상을 통해 한·중 FTA가 보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 무역 자유화를 달성하고, 효과적인 기업 보호를 위한 협정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며 협상 의의만을 강조했다. 중국에 협력해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자는 식의 확답은 피한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여러 통상 현안이 많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해 대응하고 있다"며 "중국과는 앞으로 더 많은 협상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응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 美中 무역전쟁 발발 위기…韓 '넛크래커' 신세로 전락할 수도

미국은 철강 관세 부과를 앞세워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반(反) 중국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주 중 100여개 중국산 수입제품에 약 64조원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이에 중국은 주변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공동 대응하자는 나섰다. 중국은 한·중 FTA 후속 협상과 함께 한국과 중국, 일본 동아시아 3국의 자유무역을 위한 협상도 진행하자며 적극적인 협력 제스처를 보냈다.

한국은 어느쪽 손도 들어줄 수 없는 처지다. 한국은 양국과 각각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어느 한쪽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격화될수록 한국은 양자택일을 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고, 이 경우 한국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다만, 한국 정부는 현재로서는 미국측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로 인해 국내 철강 업계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피해 예방을 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또 최근 남북 정상회담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 한국은 미국과의 안보·정치적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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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미 동맹 관계를 우선시하며 마냥 미국측에 일방적으로 손을 들어줄 수만은 없기도 하다. 중국이 한국이 미국 손을 들어줬다고 판단해 한국에 대해 무역 제재를 가할 경우 한국이 입을 경제적 피해가 막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해 한국이 입은 산업계 피해액은 최대 약 17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5월 "사드 보복으로 올해 우리 경제는 최대 8조50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고, IBK경제연구소는 과거 중국의 대(對)일본 경제 보복 사례를 바탕으로 1년가량 무역제재가 지속할 경우 한국이 입을 피해 규모를 76억9000만~147억6000만달러(약 8조8000억~16조9400억원)로 추정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가 한국 단체 관광 상품을 전면 금지하면서 작년 3월부터 9월까지 중국인 관광객은 203만6215명으로 전년(633만6312명)보다 68% 감소한 바 있다. 또 한국의 서비스 분야 대(對)중 수출은 2016년 206억달러로 전체 수출 949억달러의 22%를 차지할 만큼 중국과의 통상 협력은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특정 국가를 선택하고 특정 국가는 배제하는 방식보다는 자유무역 질서와 규범이라는 원칙에 따라 국가 간 관계를 유동적으로 조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큰 국가이기 때문에 보호무역주의 확산은 치명적인 피해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 정부는 미국이든 중국이든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더욱 강하게 확립하려는 쪽과 협력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통상 현안을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허 교수는 "미중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국과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중견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데 집중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며 "캐나다와 호주 등과 다자주의체계 강화를 위한 협력 체계를 만들어 보호무역주의 확산을 주도적으로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