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지난 19일 저녁 대우건설의 본부장급 임원 6명이 전격적으로 교체됐다. 대주주인 한국산업은행이 퇴근 시간에 임박해 본부장급 12명의 절반을 경질한 것이다. 회사 안팎에선 2월 초 호반건설에 매각하는 작업이 무산된 것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우건설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회사 경영을 총괄하는 산업은행 출신 대표이사와 매각 무산의 빌미가 된 모로코 부실 책임자인 담당 본부장은 그대로 놔두고 다른 임원만 문책하는 것에 직원들이 납득하겠느냐"고 말했다. 직원 사이에선 "대주주(산은)의 갑(甲)질" "매각 무산에 대한 일방적인 책임 전가"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산업은행의 부실 기업에 대한 무능한 구조조정이 천문학적인 세금 낭비는 물론 산업 전반에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구조조정 질질 끌고, 실기(失機)

지난 19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광주광역시로 내려가 금호타이어 노조를 만났다. 해외 매각에 반대하는 노조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양측은 의견 차이만 재확인했다. 노조는 "해외 매각을 중단하라"면서 24일 총파업을 예고했고, 산은은 법정관리로 갈 수 있다며 압박하고 있다. 2014년 말 워크아웃을 졸업한 금호타이어는 작년 3월 중국 더블스타에 9550억원에 매각한다는 협약을 체결했지만, 상표권 문제와 산은의 어설픈 대응 등으로 무산됐다. 이후 금호타이어 몸값은 하락했다. 작년 156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당기순손실은 전년의 2배로 늘었다. 매각 대금은 1조원에서 6400억원으로 떨어졌다.

대우건설도 지난 2월 호반건설과 하던 매각 협상이 마지막 단계에 무산됐다. 산은은 기업 가치를 높여 재매각한다는 방침이지만, 내부 조직 동요로 매각 작업이나 구조조정은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8조원 가까운 자금이 투입된 STX 조선해양은 2012~2016년 3조4700억원 영업손실을 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래픽=양인성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의 무능력을 보여준 결정판이다. 지난 17년간 채권은행으로서나 대주주로서 방만 경영, 분식회계를 감시하지 못해 수조원대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우조선해양에 쏟아부은 자금은 12조원이 넘는다.

◇면피 급급…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대우건설 인사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M&A 불발 책임을 대우건설에만 떠넘긴 듯한 인사 조치는 이동걸 회장이 과거 산업은행을 비판한 내용과 상반되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 매각 무산에 작년 9월 취임한 이 회장도 책임이 있는데도 대우건설에만 전가한다는 것이다. 그는 동국대 초빙교수로 있던 2016년 6월 '기업 부실, 몰랐나 숨겼나'란 제목의 언론 기고에서 대우조선해양 부실에 대한 산은의 책임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은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상황을 전혀 모를 정도로 무능했나? 무관심했나? 아니면 알고 숨겼던 것인가?"라고 적었다. 칼럼대로라면 그가 매각 작업을 벌인 대우건설의 해외 부실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숨겼다면 매각 불발에 대한 책임을 대우건설에만 떠넘겼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산업은행 회장은 정권의 전리품이었다. 노무현 정부(유지창·김창록), 이명박 정부(민유성·강만수), 박근혜 정부(홍기택·이동걸)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親)정권 인사가 차지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산은 회장은 지난해 9월 임기를 1년 6개월 남겨둔 이동걸 회장이 물러나고, 문재인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동명이인의 이동걸 회장이 이어받았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8~2016년 산은을 나온 임직원 124명이 산은이 지분을 보유하거나 관리 감독하는 기업에 낙하산으로 취업했다.

산은은 지난 2016년 대우조선해양의 부실과 비리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임직원의 출자회사 재취업을 금지하는 혁신안을 발표했지만 유명무실이다. 송문선 전 부행장은 작년 3월 퇴직 반년 만에 대우건설 부사장으로 내려갔고, 8월 대표이사에 임명됐다. 임해진 전 부행장은 퇴임 1개월이 채 되지 않아 지난 1월 KDB생명의 부사장이 됐다.

◇덩치만 키우는 산업은행

산은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부실 기업 정리의 선봉에 나섰지만, 부실 기업에 세금을 쏟아부어 산소호흡기로 연명시키는 데 급급해왔다. 실적은 나빠졌고, 덩치만 커졌다. 2015년과 2016년 각각 1조8951억원, 3조6411억원 순손실을 냈다. 임직원은 2012년 2640명에서 작년 말 3326명으로 26% 늘었다.

전문가들은 건설·조선업 등 개별 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산은이 단기 실적에만 급급해 매각 타이밍을 놓쳐 결국 구조조정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은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계속 매각 타이밍을 놓치고 지지부진했던 이유 중 하나는 회수율 극대화에 집착했기 때문"이라며 "누군가가 희생하고 고통 분담을 해야 하는 구조조정에서 회수율만 좇는 건 결국 구조조정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에 팽배한 관료적 보신주의도 문제다. 대우건설에서 퇴사한 한 인사는 "산업은행은 국내외 수주전에서 일이 되게 하려는 게 아니라 뭐든 하지 말라는 식"이라며 "은행이 주인인 건설사가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빌리는 지경"이라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부분을 별도로 독립시켜야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