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월부터 시행되는 근무시간 단축에 대비하고 임직원들의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근무방식을 바꾸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 몇몇 대기업은 퇴근 시간이 지나면 컴퓨터(PC)를 강제로 끄거나 직원들이 2주 연속 휴가를 붙여서 쓰도록 독려하고 있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이달 16일부터 매주 수요일, 금요일에 퇴근 시간 후 PC를 강제로 끄는 'PC 오프(OFF)'제를 시행하고 있다. 본사는 오후 6시, 공장은 오후 5시30분이 되면 PC가 자동으로 꺼져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에쓰오일은 6월까지는 수, 금요일만 'PC 오프'를 시행하고, 7월부터는 매일 시행할 계획이다.
◇ 대기업들 근무방식 개조작업 한창
롯데그룹은 올해부터 'PC오프'를 전 계열사에 일괄적으로 도입했다. 기존에는 백화점, 카드, 홈쇼핑 등 19개 회사에서만 운영했다. 롯데는 초과 근로 시 휴가로 보상하는 '근로시간 저축 휴가제'도 계열사별 상황에 맞게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또 롯데 전 계열사는 작년 1월 남성육아휴직을 의무화해 배우자가 출산하면 최소 한 달을 의무적으로 쉬도록 했다. 휴직 첫 달은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한다.
삼성전자(005930)는 근로시간 단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올해부터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해 운영하고 있다. 3월부터는 직원이 출산을 위해 난임 치료를 원하면 연간 사흘의 유급휴가를 주는 난임 휴가를 신설했다. 남성 직원의 배우자 출산휴가는 최대 5일에서 10일로 늘렸다.
올해 초부터 '주 35시간 근무'를 시행한 신세계(004170)는 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임직원들 삶도 바뀌고 있다. 특히 일과 육아를 함께 하는 엄마들은 퇴근 후에 아이를 돌볼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한 직원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5시 퇴근이 자연스러워졌다"고 했다.
한화는 작년부터 과장 이상 승진자에게 한 달간 휴가를 주는 안식월 제도를 시행 중이고,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는 2주간 휴가를 붙여서 쓰는 집중휴가제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096770), SK텔레콤(017670)등은 상사 결재 없이 휴가를 쓸 수 있는 '휴가 셀프 승인' 제도를 운영 중이다.
◇ "워라밸도 좋지만…근무제도 더 유연해져야"
근로자 300인 이상의 기업과 공공기관의 주당 근로시간이 7월 1일부터 일괄적으로 52시간으로 줄고 이를 어기면 사용자가 처벌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유사와 철강업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등은 특정 기간에 일이 몰릴 수밖에 없는데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정유사는 정기적으로 원유정제설비(CDU·Crude Distillation Unit)를 정비·보수한다. 보수 기간에는 설비 가동을 멈추기 때문에 대규모의 인력을 한꺼번에 투입해 보수 기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정유 공장은 평상시에는 4조 3교대로 운영돼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밑돌지만, 보수 기간에는 52시간을 초과하게 된다. 포스코등 철강업체도 정기적으로 고로를 재정비한다.
정보통신(IT), 자동차, 반도체 등 신제품을 주기적으로 출시하는 기업들도 근무시간 단축 시행을 앞두고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스마트폰 개발 부서는 신제품 출시 전 오류를 줄이기 위해 거의 매일 야근을 해 왔는데, 근무시간이 강제로 줄면 신속한 대응이 어려워진다.
지금은 노사가 합의하면 3개월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할 수 있다. 3개월간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지 않으면 특정한 날, 특정한 주에는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재계는 이 기간이 너무 짧고 절차가 복잡하다며 기간을 6개월, 1년으로 늘리고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CDU 보수 기간에 주당 52시간 근무를 맞추려면 투입 인원을 대거 늘리거나 공장 문 닫는 기간을 늘려야 하는데, 1~2개월 보수를 위해 인원을 늘리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며 "일부 업종은 탄력 근무를 좀 더 신축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