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4층의 투명 유리창 안에서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타조처럼 기다란 목에 카메라 눈을 단 로봇 지게차가 경고 음악을 울리며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로봇은 피라미드를 거꾸로 엎어 놓은 모양의 반제품 용기를 들어 파이프에 장착했다. 3층으로 내려간 반제품은 자동 기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알약이 돼 쏟아져 나왔다.

지난 9일 경기도 화성시의 한미약품 팔탄공단 스마트 공장에서는 원료 의약품을 섞어 반죽하고, 알약 모양을 만들어 겉면에 글자를 새기거나 다른 물질을 코팅하는 모든 작업이 5층에서 1층까지 물 흐르듯 자동화 기계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었다.

원료를 기계에 붓고 반제품을 옮기는 작업도 모두 로봇이 수행했다. 간혹 보이는 사람들은 기계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점검만 했다. 완성된 제품을 창고로 옮기고 주문을 받아 출고하는 것도 로봇 팔과 자동 크레인이 맡고 있었다.

한미약품이 국내 제약 역사상 처음으로 조 단위 신약 기술 수출에 성공한 데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공장을 완공해 글로벌 제약 생산 기지로의 도약까지 노리고 있다. 우종수 한미약품 대표이사 사장은 "팔탄 스마트 공장은 의약품 연구·개발에서부터 생산·유통까지 한 번에 이뤄지는 제약 분야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글로벌 전초 기지"라며 "제약업계 최초로 전자태그(RFID)를 도입하면서 시작된 한미의 생산 혁신이 스마트 공장으로 완성됐다"고 밝혔다.

한미약품의 팔탄 스마트 공장은 공정의 95%가 자동화돼 사람은 장비 작동을 검사하는 역할만 한다(왼쪽). 반제품 이동도 로봇 지게차가 알아서 한다(오른쪽).

◇국내 최초로 수직 자동화 공정 도입

한미약품은 15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지난 2016년 11월 팔탄 스마트 공장을 완공했다. 지상 8층, 지하 1층 규모의 공장에서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복합 고혈압 치료제 아모잘탄, 로수젯과 고혈압·고지혈증 복합 치료제 로벨리토, 발기부전 치료제 팔팔 등 베스트셀러 의약품을 연간 60억정 생산할 수 있다. 이 약들은 미국 MSD, 프랑스 사노피 등 글로벌 제약사를 통해 세계 시장으로도 나간다.

주문기 공장장(부사장)은 "스마트 공장은 국내 최초로 수직 일관 생산 시스템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6~7층에서 원료의 양과 무게를 재고 5층에서 혼합하고 습식 공정을 거쳐 과립 형태의 반제품을 만든다. 3층에서는 반제품을 받아 알약 형태로 만들고 코팅과 인쇄, 검사 과정을 거친다. 최종적으로 1층에서 완제품이 자동 포장 공정을 거쳐 물류 창고로 이동한다.

주 공장장은 "2·4층에서 로봇 지게차가 반제품을 알아서 적재적소에 공급한다"며 "처음 원료의 양을 잴 때나 포장 재료를 기계에 공급할 때 외에는 95% 이상 자동화 공정"이라고 말했다.

알약 제조나 검사 공정은 야간에 사람 없이도 진행이 가능하다. 또 과거 공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오염 방지를 위해 위생복을 착용해야 했지만, 스마트 공장은 복도에서 그대로 투명 유리창을 통해 내부 공정을 볼 수 있게 했다.

주문기 한미약품 팔탄공단 공장장(부사장)은 "유통 투명화를 위해 지난 2009년 도입한 전자태그(RFID)가 스마트 공장의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전자태그로 유통 투명성 높여

한미약품의 스마트 공장은 생산과 연구·개발을 하나로 묶었다는 점도 특징이다. 팔탄공단 인력 576명 중 제제연구센터 연구원이 59명이다. 제약사들은 생산 설비에 여유가 있을 때 국내외 업체의 약품 생산을 대행하기도 한다.

한미약품은 이런 위탁 생산(CMO)뿐 아니라 약품 형태와 구조에 대한 연구, 대량생산 공정 개발 등 수탁 개발(CDO)까지 대행한다고 설명했다. 우종수 사장은 "스마트 공장에서 본격화될 CDMO(위·수탁 개발 생산) 사업은 한미약품이 다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자태그로 유통 투명화, 생산효율 높여

한미약품은 의약품 유통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09년 도입한 RFID가 스마트 공장의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RFID 안에 제품 정보를 담아 버스 카드처럼 리더기를 이용해 판독할 수 있는 기술이다. RFID는 공장에서 제품 재고 확인이나 출고 속도를 크게 높였다. 주문기 부사장은 "바코드는 50㎝ 이내 근거리에서 빛으로 한 개씩 인식할 수 있지만 RFID는 전자파로 여러 개를 동시에 5m 거리까지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산 이력에 대한 정보까지 담을 수 있어 불량품이 발견되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도매상들이 의약품에 바코드를 병행 부착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RFID 리더기를 새로 구매하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주문기 부사장은 "정부 지원까지 받아 제품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사물 인터넷 기술을 적용한 것인데 생산 효율이 떨어지는 바코드를 붙이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오히려 RFID 기술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