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 주도권이 사실상 민간인으로 구성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이하 의결권 전문위)로 넘어갔다. 정부는 국민연금에 대한 외풍(外風)을 차단하고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학 교수들이 참여하는 의결권 전문위가 사회·경제적으로 민감한 안건에 대해 소신껏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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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 전문가 요구시 의결권 넘겨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운용위)는 16일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2018년도 제1차 회의를 개최하고 의결권 전문위에 ‘안건부의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안을 의결했다.

지금까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내부인사로 구성된 투자위원회에서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 있는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했다. 투자위원회는 찬반 여부를 결정하기 곤란한 안건을 의결권 전문위에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의사결정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국민연금은 2015년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 여부를 의결권 전문위에 맡기지 않고 투자위원회 차원에서 결정했다가 결국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는 고통을 겪었다. 당시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과 홍완선 투자위원회 위원장(기금운용본부장)이 이 일로 구속됐다.

국민연금 투자위원회는 지난해 11월에 열린 KB금융(105560)주주총회에서도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노동이사) 선임에 찬성표를 던져 논란을 키웠다. 국민연금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공약을 의식해 코드맞추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일었다.

현재 의결권 전문위는 정부 추천 2명, 사용자 대표 추천 2명, 근로자 대표 추천 2명, 지역가입자 대표 추천 2명, 연구기관 추천 1명 등 총 9명으로 이뤄졌다. 2명은 연구기관 연구원, 나머지 7명은 대학 교수다. 앞으로는 이들 중 3명 이상이 요구하면 투자위원회는 안건에 대한 결정권을 의결권 전문위에 넘겨야 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 첫 번째)이 16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실효성 있을까” 무용론도

일각에서는 새 의결권 행사지침에 대한 회의론을 제기한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의결권 전문위가 과연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민감한 안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안건부의 요구권을 행사할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의결권 전문위가 예민한 안건에 대한 의결권을 여론에 등떠밀려 행사하거나 힘센 특정 주주의 입맛에 맞춰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며 “민간 전문가에게 맡기면 외압이 사라진다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의 안건 상정 권한을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들과 공유하면 의결권 행사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