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제너럴모터스(GM)의 한국 철수 가능성으로 주요 경쟁사인 한국GM의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면서 소비자들이 현대·기아차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출시된 현대차의 신형 4세대 싼타페

지난해 현대·기아차는 그랜저에 이어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코나, 스토닉 등을 잇따라 출시했다. 올해도 중형 SUV인 싼타페 완전변경 모델을 비롯해 다양한 차종에서 신차를 선보이며 국내 시장 석권에 나서고 있다.

반면 경쟁사인 한국GM과 르노삼성, 쌍용자동차등은 현대·기아차를 견제할 만한 신차가 많지 않다. 한국GM이 중형 SUV인 에퀴녹스를 수입해 판매할 예정이지만, 최근 철수설로 한국GM에 대한 신뢰가 낮아져 눈에 띌 만한 실적을 거두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한국GM 몰락의 반사효과…2월 현대·기아차 점유율 83%

14일 국내 완성차 5개사에 따르면 지난달 현대자동차는 국내 시장에서 전년동월대비 5.5% 감소한 5만200대를 판매했다. 설 연휴에 따른 조업일수 감소로 전체 판매량은 줄었지만, 수입차를 제외한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2월 44.4%에서 올해는 47.6%로 3.2%포인트 상승했다.

기아자동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 줄어든 3만7005대를 판매했다. 역시 국내 점유율은 32.7%에서 35.1%로 2.4%포인트 높아졌다. 국내 완성차 5개사를 기준으로 지난해 1월 77.1%였던 현대·기아차의 점유율이 1년만에 82.7%로 상승한 것이다. 점유율 80.5%를 기록한 전달에 비해서도 2%포인트 넘게 오른 수치다.

이처럼 최근 국내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판매 쏠림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GM의 한국 시장 철수설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 많다. GM은 지난달 12일 크루즈와 올란도를 생산하는 군산공장을 전격 폐쇄했다. 이어 정부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추가 지원에 나서지 않을 경우 한국에서 전면 철수할 수 있다는 뜻도 전했다.

이 때문에 GM이 철수할 경우 한국GM 차량의 중고차 가격이 급락하고 제대로 된 사후관리(A/S)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한 소비자들이 대부분 검증된 현대·기아차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국GM의 지난달 판매량은 5804대로 전달에 비해 26% 줄었다. 군산공장 폐쇄로 단종이 결정된 크루즈의 판매량이 234대로 전달대비 52% 급감했다. 반면 크루즈와 준중형세단 시장에서 경쟁하는 현대차 아반떼의 판매량은 5807대로 전달에 비해 2.3% 증가했다.
◇ 그랜저 이어 싼타페도 '돌풍' 조짐출시 20일만에 판매 2만2000대 돌파

최근 출시한 신형 싼타페가 큰 인기를 끌면서 현대·기아차의 판매 독주가 지속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현대차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출시된 신형 싼타페의 사전계약을 포함한 전체 계약대수는 이달 9일 기준 2만2000대를 돌파했다. 영업일수 기준으로 출시된 지 불과 20일만에 지난해 전체 판매량(5만1661대)의 42%를 넘어선 것이다.

신형 싼타페는 지난 2012년 출시된 3세대 싼타페 이후 6년만에 완전변경된 4세대 모델이다. 전체적인 내부와 외관 디자인이 새롭게 바뀐 데다, 국산차 최초로 모든 트림에 지능형 주행안전기술(ADAS)을 기본 적용하는 등 성능도 크게 개선돼 중형 SUV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016년말 출시한 신형 6세대 그랜저를 앞세워 한 동안 부진했던 국내 시장에서의 패권을 되찾는데 성공했다. 그랜저는 지난해 단 두 달을 제외하고 매달 1만대가 넘게 판매되며 현대차의 국내 점유율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그랜저가 했던 '견인차'의 역할을 올해는 신형 싼타페가 해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미니밴, 전기차 SUV로 이어지는 '신차 폭격'…현대·기아차 독주 지속될듯

자동차 업계는 올해 현대·기아차의 국내 시장 독주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싼타페 이후에도 현대차와 기아차는 다양한 신차를 내놓을 계획이지만, 나머지 3사는 현대·기아차를 견제할 만한 신차의 라인업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카니발을 앞세워 국내 미니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아차는 지난 13일 일부 디자인을 변경하고 성능을 개선한 ‘더 뉴 카니발’을 출시했다. 다음달에는 대형세단 K9의 완전변경 모델도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현대차의 코나 일렉트릭

현대차는 지난해 출시한 소형 SUV 코나의 전기차 모델인 코나 일렉트릭을 다음달 선보일 계획이다. 올 연말에는 새로운 대형 SUV의 출시도 예정돼 있다.

반면 나머지 3개사의 신차 라인업은 현대·기아차의 독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GM은 2분기 중 중형 SUV 에퀴녹스를 출시할 계획이지만, 이미 철수설로 인해 브랜드 가치가 크게 떨어진데다 미국산 차량을 수입 판매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싼타페와 대등한 수준의 경쟁을 펼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르노삼성은 올 상반기 중 소형 해치백 클리오를 출시하고 하반기에는 1종의 미니밴을 추가로 선보일 예정이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서 소형 해치백의 수요가 한정돼 있고 미니밴 시장은 카니발이 사실상 독점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의미있는 판매실적 개선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가장 수요가 많은 중·대형 세단과 SUV 시장에서 현대·기아차가 신차를 통해 확실한 독과점 체제를 구축했다”며 “앞으로 오랜 기간 현대·기아차의 판매 쏠림현상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