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태양광 셀(Cell·전지) 및 모듈(Module·셀을 이어붙인 판)에 이어 철강, 변압기까지 국내 산업계 전반이 미국발(發) '관세 폭탄'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우선 국내 주요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뒤, 이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커 관세 폭탄이 다른 업종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3차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진행한다. 두 나라는 올해 1월 5일 미국에서 1차 개정 협상을 진행했고, 같은 달 31일에 서울에서 2차 협상을 진행했다. 이번 협상의 관심 중 하나는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들어주고 철강 관세를 낮추는 거래를 할지 여부다. FTA와 철강 관세 협상 대상은 모두 USTR이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열연강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입 철강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했다. 이들 나라와는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NAFTA)을 재협상 중인데, 협상에 쓸 카드로 남겨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으면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만약 재협상 결과가 좋지 않으면 미국은 두 나라를 관세 대상국에 추가할 방침이다.

미국이 나프타 재협상과 관세를 연계하면서 한·미 FTA 협상에서도 관세를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한국산(産) 수입 철강에도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는데, 안보 협력국에 한해 USTR과 협의를 거쳐 미국 우려를 해소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면 관세를 면제하거나 일부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여지를 남긴 상태다. 미국은 이달 23일에 수입산 철강 관세 부과를 최종 결정한다.

산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FTA 개정 등 원하는 사안이 관철될 때까지 관세를 무기로 활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관세폭탄이 화학, 자동차부품, 반도체 등 다른 업종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은 한국산 페트 수지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진행 중이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가 자국 기업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는지 조사하고 있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은 최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적어도 11월 미국 중간선거 때까지 트럼프 행정부는 파상적인 통상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판단하면 다른 분야로 압박 범위를 넓힐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은 올해 1월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전지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결정했고 철강에 이어 최근엔 변압기에도 60.81%에 달하는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이번 조치로 현대일렉트릭, 효성(004800), LS산전, 일진 등은 미국 수출에 차질이 예상된다. 현대일렉트릭은 국제무역법원(CIT)에 이번 판정을 제소할 계획이지만, 관세가 언제 다시 낮아질지는 불투명하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대(對)미국 무역수지 흑자가 최근 2년간 크게 줄어든 점을 알려야 한다"며 "과도한 대미국 무역 의존도를 벗어나 유라시아, 아세안 등의 무역 비중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