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시각)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NAFTA 재협상 회의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USTR 대표, 일데폰소 과하르도 멕시코 경제장관,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외무장관(오른쪽부터) 등 3개국 협상 대표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미국산 제품을 타깃으로 삼아, 정확히 그런 제품을 대상으로 타격을 가할 것입니다. 우리는 대응할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드러날 때까지 공공연히 대응방안을 밝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데폰소 과하르도 멕시코 경제장관은 최근 멕시코 최대 방송사 텔리비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이 수입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대상에 멕시코를 포함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즉각 보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이번 관세부과 대상국에서 멕시코, 캐나다를 제외했지만,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 상황에 따라 두 나라를 추가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NAFTA 재협상 수석대표인 과하르도 장관이 이를 정면으로 맞받은 것이다. 캐나다도 명시적으로 보복하겠다는 입장이다.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외무장관은 “미국이 캐나다산 철강, 알루미늄 수입 제한에 나서면 캐나다는 즉각 대응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각각 25%·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가운데 캐나다와 멕시코는 ‘NAFTA 재협상이 잘 안 풀리면 관세 폭탄 대상에 포함될 것’이란 미국의 엄포에 위축되긴 커녕 즉각 보복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류는 5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던 NAFTA 재협상 제7차 회의에서도 드러났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통상대표부(USTR) 대표 등은 의도대로 협상이 풀리지 않자 캐나다, 멕시코와 각각 개별협상을 벌일 용의가 있다고 새 카드를 꺼낸 반면, 멕시코와 캐나다는 “어디까지나 NAFTA 3개국 모두 혜택을 볼 수 있게 재협상을 진행해 나갈 것”(과하르도 경제장관)이라며 여유 있는 모습까지 보였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NAFTA 재협상 선언을 할 때만 해도 멕시코, 캐나다가 미국에 끌려 다니면서 상당한 양보를 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2017년 8월 회의가 시작된 이후 미국이 밀리는 모습이다. 멕시코와 캐나다가 상대적으로 여유를 갖고 재협상에 임하고 있다. 비결은 멕시코와 캐나다의 공세적 협상 전략이다. 통상 문제에서 미국의 특정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내놓거나, 그동안 잘 알려져 있었지만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미국 통상 법규의 모순을 문제삼는 등 미국의 ‘약한 고리’를 집중적으로 두들기는 것이다.

◇ '옥수수 다변화' 꺼내자 화들짝 놀란 농업계

멕시코는 주식인 옥수수를 비롯해 농산물 수입선 다변화에 나서면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옥수수의 경우 지난해 브라질산 수입량(58만3000톤)을 2016년 대비 9.7배 늘렸다. 2016년 1380만톤에 달했던 미국산 옥수수 수입량을 브라질 산으로 대체하겠다는 게 멕시코의 목표다. 엔리케 페나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경제를 다각화해 미국 의존에서 탈피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멕시코는 대두, 돼지고기, 설탕 등 미국산 농산물을 전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수입한다. 대미 수입 5250억달러의 3.4%(180억달러·2016년 현재)에 불과하지만 애리조나, 텍사스 등 멕시코 수출이 주(州) 전체 수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물량이다. 또 멕시코의 으름장은 미국내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센 농민들을 겨냥한 조치이기도 하다. 애리조나주 최대 지역지 애리조나리퍼블릭은 지난 11일 “NAFTA가 철폐될 경우 설탕 등의 멕시코 수출길이 막히고 옥수수 시럽 수출량도 급감할 것”이라며 “NAFTA 철폐 첫 해에만 주(州) 내에서 3만4000~6만8000명, 전국적으로 180만~36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동차와 관련해선 미국산 자동차 부품에 대한 고관세 카드를 꺼내는 방식으로 맞서고 있다. NAFTA 폐기시 배기량 1000㏄ 이상 엔진, 변속기 등에 대해서 최대 50% 이상 관세를 매길 수 있는데, 멕시코산 자동차 판매는 줄겠지만 그 이상으로 미국산 자동차 부품의 대(對)멕시코 수출도 급감할 것이라는 위협이다.

, 통상법 모순 압박 카드로 공격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 옥수수 농장.

캐나다는 미국 통상 법규의 ‘모순’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올해 1월 캐나다는 WTO(세계무역기구)에 미국의 반덤핑, 상계관세 등 수입제한 조치와 관련된 미국 법규를 문제삼아 제소했다. 소장에서 캐나다 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브라질, EU(유럽연합)를 상대로 한 미국의 수입 제한 조치를 광범위하게 문제 삼았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WTO 통상 규정에 들어맞지 않은 미국 국내법 가운데 그간 애매한 상태로 용인됐던 것을 문제 삼은 것”이라며 “미국에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이라 NAFTA 딜브레이커(협상을 깨뜨리는 요인·deal breaker) 가능성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보통 WTO 제소는 소송 제기까지 6개월 이상이 소요되고, 판결도 2년 이상 걸린다. 게다가 상소위원(일종이 재판관)이 미국의 신규 선임 거부로 4명밖에 남지 않아 이전보다 재판에 걸리는 시간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캐나다는 미국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폭발력이 센 이슈를 제기해 미국이 해당 문제에 달려들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이다.

캐나다는 무기 구매도 협상카드로 사용한다. 지난해 미 상무부가 캐나다 항공기 제작회사 봄바르디에를 대상으로 300%에 가까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자 바로 보잉사가 만드는 ‘슈퍼호넷 F-18E/F’ 전투기 구매 계획을 백지화했다. 최근 신규 전투기 수주를 못해 일감 부족에 시달리는 보잉 방산부문의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대신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F-18A/B’ 구형기를 중고로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한국도 보복관세 언급 등 협상카드 늘릴 필요 있어”...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도

한국도 미국을 상대로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할 게 아니라, 보복관세 검토 등 공세적인 행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 정부가 산업계의 요구가 없음에도 자의적으로 특정 상품을 표적으로 반덤핑, 상계관세 부과에 나서는 직권조사의 경우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밝힌 WTO 제소 방안 등으론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무역 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을 상대로 효력을 얻기 어렵다”며 “직접 무역 보복도 실행 가능한 옵션으로 검토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허윤 서강대 교수(국제통상학회장)은 “캐나다 등도 경제의 미국 의존도가 높지만 제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정책 스탠스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보복 조치에 실제로 나서지 않더라도, 보복 조치 가능성을 언급한 뒤 대통령이 바게닝칩(bargaining chip, 협상용 패)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이 있다”고 예를 들었다.

한편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한-미 교역 구조 상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소비재 등의 비중이 낮고 수입제한 조치를 취해도 미국 산업이나 기업에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를 압박할 카드로 사용하기엔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