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 계좌 가운데 금융실명법 위반인 27개 계좌에 과징금 30억9000만원이 부과될 예정이다. 금융실명제 시행 당시 해당 계좌들에 61억8000만원이 들어있었고, 금융실명법은 이 액수의 절반을 과징금으로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5일 이런 내용을 포함한 '이건희 차명 계좌에 대한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27개 차명 계좌에 61억8000만원
금감원이 이 회장의 차명 계좌 27개에 대한 검사를 실시한 것은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2일까지다. 앞서 법제처가 이 회장의 차명계좌 가운데 금융실명제 시행(1993년 8월 12일) 이전에 개설됐고, 실명제 이후 이 회장 아닌 사람의 명의로 남은 계좌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데 따른 것이었다.
이 회장의 차명 계좌 가운데 실명제 이전에 개설된 계좌는 27개였다. 삼성증권, 미래에셋대우, 신한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등 증권사에 만들어진 증권 계좌였다. 금감원은 이날 "27개 계좌의 실명제 시행일 당시 자산 총액은 61억8000만원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해당 계좌에 들어있던 주식 수에 당시 주가를 곱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실명제법에 따른 과징금은 계좌 액수의 50%인 30억9000만원"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1202개 차명 계좌는 중과세
이 회장의 차명 계좌가 처음 불거진 것은 2008년 삼성 특별검사 때였다. 당시 특검이 발견한 차명 계좌와 지금까지 금감원이 추가 확인한 차명 계좌를 모두 합치면 1229개이다. 여기에 2007년 말 기준으로 2조1600억원이 들어있었다.
이번에 과징금을 부과한 27개 계좌 외에 나머지 1202개는 실명제 시행 이후 만들어진 계좌이다. 이 계좌들은 과징금 부과 대상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생긴 이자·배당소득에는 90%를 중과세하도록 돼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징수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과징금 액수 적은 이유는 주가 탓
이번에 금감원이 과징금 액수를 확인한 이 회장 차명 계좌 27개에는 2007년 말 기준(삼성 특검 수사 발표 시점)으로 963억원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과징금 부과 기준 시점인 1993년 8월 해당 계좌들에는 61억8000만원만 있었다는 게 금감원 검사 결과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낮았던 주가가 시간이 흐르며 급격히 높아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검사 결과, 이 회장 차명 계좌 27개에는 삼성 계열사 주식이 대부분이었고 삼성전자 주식이 특히 많았다. 1993년 8월 삼성전자 주식은 주당 3만8600원이었다. 삼성전자 주가는 삼성 특검이 차명 계좌를 확인한 2007년 말에는 55만6000원, 올해 2월 말에는 236만9000원 등으로 각각 14배, 61배씩 뛰었다.
하지만 이번 금감원 검사에서 이 계좌들에는 현재 잔액이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모두 인출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과징금 징수 절차가 복잡해진다. 이 회장 차명 계좌가 개설된 증권사들이 먼저 정부에 과징금을 내고, 나중에 이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해서 돈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