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이마트 죽전점. 지하 1층 가공식품 판매대에 새로 설치한 '전자 가격 표시기'가 붙어 있었다. 명함만 한 것부터 A4 용지 크기의 대형 표시판도 보였다. 지난주까지는 종이 가격표가 붙어 있던 자리다. 한줄기 지원팀 파트장은 "점포나 본사에서 중앙 시스템을 통해 표시기 가격을 변경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이 매일 종이에 인쇄한 가격표를 일일이 손으로 교체하던 2시간짜리 작업이 사라진 것이다. 이마트 죽전점은 이달 들어 전체 품목의 절반인 4만여 종 가격표를 전자 표시기로 바꿨다. 설치비 3억원이 들었지만, 직원들이 절약하는 시간과 업무량을 감안하면 남는 투자라는 것이다.

이마트 죽전점은 신세계그룹이 근무시간을 줄이면서도 업무 효율을 높여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는 시범 점포다. 전자 가격 표시기 외에도 김밥 성형기와 전동식 운반기 같은 자동화 장비를 도입했고, 새로운 업무 시스템을 운영해 보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올 들어 하루 7시간 일하는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국내 기업 전체의 당면 과제다.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이기도 하다.

매장에는 전자 가격 표시기, 자동 김밥 성형기 도입

죽전점 지하 1층 식품 매장은 '자동 김밥 성형기'를 활용하고 있다. 밥을 넣으면 일정한 두께로 김 위에 고르게 펴주는 기계다. 조리사는 속재료를 넣고 김밥을 말아주면 된다. 바로 옆에는 김밥을 균일하게 잘라주는 절단기가 있었다. 오창환 즉석조리 담당 매니저는 "성형기와 절단기 구입에 1100만원이 들었는데, 작업 시간이 30% 이상 줄었고 힘도 훨씬 덜 든다"고 말했다.

일일이 손으로 끼우던 종이 가격표 사라졌어요 - 27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이마트 죽전점에서 한 직원이 전자 가격 표시기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까지 종이 가격표를 수작업으로 교체하던 방식을 사용하던 이마트 죽전점은 이달 들어 전체 품목의 절반인 4만여 종의 가격표를 전자 표시기로 바꿨다.

죽전점은 상품 발주 시스템도 바꿨다. 가공식품과 생활용품, 문구·완구 등 상품의 자동 주문 비율을 60%에서 90%로 높였다. 이전과 주문량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면 전과 같은 양이 자동적으로 주문되는 방식이다. 하루 최대 3시간 걸리던 발주 시간은 30분으로 단축됐다. 줄어든 시간은 고객 서비스나 진열 관리 업무, 창고 정리 등에 쓰도록 했다.

또 점포로 들어오는 상품의 분류 체계도 고쳤다. 이전에는 물류센터에서 상품을 식품·의류·생활용품 등 3~4개 분류로 나눠 보냈기 때문에 점포에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재분류해야 했다. 이걸 물류센터가 보낼 때부터 10단계로 나누자 분류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대당 250만원짜리 전동식 운반기를 도입하자 직원들이 반겼다. 쌀이나 주류, 음료, 수박처럼 무거운 상품을 이동시킬 때 수동 운반기를 사용하면 힘이 들고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2L짜리 생수 500여 병이 쌓인 더미를 전동식 운반기로 옮겼는데, 힘이 거의 들지 않았다. 이마트는 이 같은 시스템을 전국 145개 점포로 확산시킬 방침이다.

사무실에선 집중 근무제, PC 셧다운제

이마트는 사무직원들의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집중 근무제도 시행하고 있다. '오전 9시는 출근하는 시각이 아니라 업무를 시작하는 시각'이라는 것이다. 또 오전 10시~11시 반, 오후 2~4시 등 3시간 30분을 '집중 시간'으로 지정해 흡연실을 폐쇄하고, 회의도 가급적 열지 않도록 했다. 지난달 15일부터 시행한 '임원 일정 공개 프로그램'도 같은 맥락이다. 임원의 월 단위 일정을 사내 내부 통신망에 반드시 공지하고 이를 지키도록 했다. 보고나 회의를 위해 다른 직원들이 불필요하게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직원 식당에선 '도시락 테이크 아웃 서비스'를 시작했다.

오후 5시 30분에는 업무용 PC를 일괄적으로 끄는 'PC 셧다운제'도 시행하고 있다. 담당 임원의 사전 결재가 없으면 PC가 재부팅되지 않는다. 오후 6시 30분 이후 퇴근자 비율이 지난해 12월에는 30%를 웃돌았는데, 최근에는 1% 이하로 떨어졌다. 야근 문화가 사라지자 사내 어린이집은 오후 6시가 지나면 텅 빈다.김맹 이마트 상무는 "다양한 혁신적 장치를 통해 업무 효율을 높여야 근로시간 감축에 따른 기업 경쟁력 약화를 막을 수 있다"며 "전 그룹에서 이를 위한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