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키우다가 하수구로 버린 악어나 거북이 강력한 돌연변이체로 자란다는 영화들이 있다. 유럽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수족관에서 키우던 애완 가재가 자연에서 무한 복제하면서 전 세계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암연구소의 프랑크 리코 박사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생태학 & 진화'에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까지 휩쓴 신종(新種) 민물가재는 1990년대 독일의 수족관에서 키우던 애완 가재에서 유래했으며, 모든 개체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복제체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채집한 '프로캄바루스 비르기날리스(Procambarus virginalis·사진)'란 대리석무늬 가재의 DNA를 해독했다. 가재들은 모두 암컷이고 35억 쌍의 DNA 염기서열이 똑같았다. 즉 암컷의 난자가 정자 도움 없이 성체로 자라나는 이른바 단성(單性)생식 또는 처녀생식을 했다는 뜻이다. 가재의 종명(種名)인 비르기날리스는 라틴어로 처녀를 뜻하는 '비르고(virgo)'에서 나왔다.

특이하게도 가재는 DNA를 담고 있는 염색체가 세 벌이었다. 동물은 일반적으로 정자와 난자로부터 각각 한 벌의 염색체를 물려받아 두 벌의 염색체를 갖는다. 대리석무늬 가재의 염색체는 전반적으로 미국 플로리다와 조지아주에 사는 '프로캄바루스 팔락스(P. fallax)'와 비슷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독일에서 키우던 한 미국산 팔락스 가재에서 정자나 난자의 염색체가 두 벌이 되는 돌연변이가 발생했고, 이것이 정상 팔락스와 짝짓기를 하면서 세 벌의 염색체를 가진 비르기날리스 종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대리석무늬 가재는 1995년 독일의 한 애완동물 애호가가 미국에서 처음 들여온 이후 애완용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얼마 되지 않아 암컷 가재 혼자 낳은 알이 정상적인 가재로 자라났다는 보고들이 잇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