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미국과 대화 채널 가동 안해 통상 압박에 속수무책"
"강경 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사태 악화…모든 채널 가동해 한국 입장 전달해야"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66·사진)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외교·안보 이슈에 의해 통상 환경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통상과 안보를 분리해서 봐서는 안된다”며 “통상 갈등이 빠른 시일내 풀려야만 한미 동맹 관계도 우호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안보 논리와 통상 논리는 다르다며 대미(對美) 통상 현안에 대해 강경 대응에 나선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이 패착으로 귀결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미국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의 세계 통상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 한국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강경 자세로만 일관할 경우 갈등만 증폭할 수 있다”면서 “통상 채널뿐 아니라 각 부처의 채널을 모두 가동해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본부장은 지난 21일 조선비즈와 전화 인터뷰를 갖고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과 미국 사이에 잇따르는 통상 마찰과 문재인 정부의 최근 강경 대응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태양광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고 무역확장법 232조를 꺼내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해 고율(53%)의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에 대해 “한국 정부가 그동안 미국과 소극적인 관계를 맺어온 결과”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이 미국의 통상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미국과의 대화 채널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대화 채널을 총동원해도 모자랄 판에 강경 대응이라는 단순한 전략으로 일관하면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일로에 접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전 본부장은 “눈에는 눈, 귀에는 귀식으로 맞대응하면 결국 큰 시장(미국)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한국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싫으면 떠나라고 미국이 말할 때 떠날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있겠느냐. 트럼프 대통령이 밉더라도 미국 시장을 놓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료 출신인 김 전 본부장은 2007년 4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당시 한국 수석 대표를 맡았고, 그해 8월부터 통상교섭본부장으로 4년 4개월동안 미국산 쇠고기 협상, 한·미 FTA 재협상 및 비준을 책임지며 한미 통상 협상을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했다. 또 19대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서울 강남구을)을 지냈다.

다음은 김 전 본부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 미국의 통상 압박 수위가 예상보다 강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뒤 1년동안 시행한 통상 관련 조치들은 기존의 세계 통상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이전만 해도 미국은 세이프가드와 무역확장법 232조를 칼집 안에 있는 칼처럼 빼지 않고 놔뒀다.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 통상 환경에서 충분히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로 칼을 빼들고 휘두르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선전 문구를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했기 때문에 미국 행정부는 이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한다는 모습을 보여줘 미국내 정치적인 지지도를 높이려고 하고 있다. 경제의 탈을 쓰고 정치적 성과를 얻으려는 모습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경제적 성과가 많으면 정치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최고 통치자 입장에서는 경제적 성과든 안보적 성과든 다 성과이고, 미국 국민 입장에서도 안보 점수든 경제 점수든 좋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무역확장법 232조 권고안에선 동맹 국가중 유일하게 한국이 포함됐다. 미국의 의도는.

“미국은 어느 나라가 중국과 철강 산업 연관성이 큰 지 봤다. 철강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급과잉이라는 점이다. 개발도상국이나 신흥국들은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산업의 쌀’인 철강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렸고, 그 결과 공급 과잉 상태가 이어졌다. 미국은 이 문제를 주요 20개국(G20)과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데, G20 회원국들은 공조해서 해결하자는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그 중심에 공급과잉이 가장 극심한 중국이 있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해야 과잉공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방안으로 세계 무역시장에서 중국산 철강 교역이 줄도록 조치를 했다. 이와 함께 중국과 강한 연관이 있는 나라를 제재해 중국산 철강 사용을 줄이려 했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이 제재 대상으로 선정됐다고 본다.”

-한국 정부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통상 현안이 계속 터지는 모습을 보면 정부가 그동안 미국에 별다른 대응을 해오지 않은 것 같다. 한·미 FTA 개정 협상 하나만 보더라도 한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과 기싸움을 한다며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는 통상 담당 부처뿐 아니라 다른 부처들이 모두 나서 다방면에서 미국과 대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강하게 이야기할 때는 강하게 이야기 하고, 미국을 달랠 때는 저자세로 나가는 식으로 유연한 전략을 사용한 경험이 있어야만 실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어떤 대화 방식을 선택할 지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강경 대응이라는 하나의 전략으로만 끌고나가는 모양새다. 미국으로선 한국이 대화할 생각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같은 추세가 지속하면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양상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미국과 다방면에서 접촉하지 않았다고 보나.

“가시적인 성과가 국민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미국과 관계를 쌓으려고 접촉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전 정부 부터 미국과의 소통 채널을 살려두지 않은 점이 현재의 통상 압박의 패착 요인이다. 대외적인 창구나 접촉 역할에 소홀했던 결과다.”

조선일보DB

-정부의 ‘강대 강’ 대응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나.

“역대 미국 정권들은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이 논리를 세워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 받아들였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그렇지 않다. 기존 논리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강경 기조로만 일관할 경우 사태가 더 악화할 수 있다. 통상교섭본부가 강경한 자세로 나가더라도 외교나 안보라인에서는 회유하는 식으로 다양한 채널을 총동원해야만 한다.

과거에 한·미 FTA 재협상 논의가 나왔을 때 현장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여가며 자기 주장을 펼치다가도, 안보라인에서 미국 측에 ‘한미동맹의 가치를 생각해서 재고해달라’, ‘양국의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회유하면 협상장 분위기가 순화됐다. 이같은 노력을 정부가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단순히 한국과 미국이 시각 차이를 갖고 있다고만 말하며 강경 대응 입장만 밝히고 있어 우려스럽다.”

-한·미 FTA 3차 개정 협상을 앞두고 있다. 미국의 통상 압박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금처럼 경직된 분위기가 계속될 경우 협상장에서도 서로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 협상은 외부 분위기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 한국과 경직된 관계가 이어질 경우 미국이 한국에 매우 불리한 협상 의제를 던질 수 있다. 협상 타결까지 시간도 길어져 장기전 양상으로 갈 수 있다.”

-안보와 통상을 분리해서 볼 수 있나.

“경제 관계는 양국 관계를 구성하는 큰 기둥이다. 안보 관계만이 한미 동맹의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시장(경제분야)에서 활동하는 양국 국민이 서로 원활하게 교류해야만 양국 동맹 관계도 긍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통상 관계가 삐걱거리는데도 불구하고 양국 동맹관계가 좋을 수는 없다. 통상 갈등을 빠른 시일내로 해결해야만 한·미 동맹 관계도 정상 궤도에 오를 것이다.”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미국의 통상 압박은 기존 통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대응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통상 채널뿐 아니라 각 부처가 가지고 있는 대미 채널을 모두 가동해 한국측의 입장을 전달하고 미국의 의견을 들어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미국은 상대방이 무엇이든 말을 해야만 문제점이 있다고 인식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직접 말을 해야만 상대방이 요구사항이 있다고 보고 대화에 나서는 것이다. 가만히 있을 경우 미국은 상대방이 자신들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본다. 통상 외 분야에서 가만히 있을 경우 미국 측 의견에 동의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과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대화 경험이 축적돼야만 구체적인 대응 방향을 찾을 수 있다.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단세포적으로 대응할 상황이 아니다. 대화 채널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