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쌓인 기업은 재구조화 필요…구조조정은 민간 주도로"
"가계부채가 소비 억제…소득주도성장 정책 디테일 부족"

다음달 한국경제학회장에 취임하는 김경수(65)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GM 철수와 같은 상황이 현실화하면 우리 경제에 ‘폭탄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일이 될 것"이라며 “GM뿐 아니라 현대·기아차 등 우리 주력 산업의 고(高)비용 구조는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의 고비용 구조는 경직된 노동 시장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노동 유연성을 높여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국내 대표 경제학술연구단체인 한국경제학회를 이끌게 된 김 교수가 당장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예상되는 기업 구조조정을 얘기한 이유는 미국 채권 금리 상승에 따라 우리 기업의 금융비용도 높아진 상황에서 오랫동안 지연된 구조조정이 기업은 물론 경제 성장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지난 12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수출 상황이 어려워지자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해운, 조선 업종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부실 기업을 당장 구조조정하기는 어렵지만, 오랫동안 부실이 쌓인 기업에 대해서는 재구조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구조조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김 교수는 “한국은행이 발간하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한은은 매년 2차례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3년 이상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이른바 ‘한계기업’을 분류해 모니터링한다. 김 교수는 구체적인 데이터에 기반해 채권단(은행)과, 은행이 지분을 가진 부실자산처리회사 ‘유암코’ 등을 활용해 민간 차원의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2007년부터 4년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을 지냈다. 이후 한국금융학회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KDB산업은행 초대 혁신위원장을 역임했고 다음달에 한국경제학회장에 취임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본격적인 통화 긴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미국 경제가 본격적인 호황기에 들어선 것인가.

“미국 실물 경제 회복세는 명확해진 것 같다. 이미 지난해 3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을 포함해 40여개국 경제를 모니터링 하는데 지난해 선진국과 신흥국 경제가 모두 회복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경제 전체가 동시에 회복된 것은 거의 25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 경제 회복세는 아직 미약하다. 한국 경제가 미국과 다른 회복 과정을 밟는 근본적인 이유는.

“구조적으로 가계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 많은 사람이 가계부채로 인한 금융부실을 우려하지만, 가계부채 급증으로 인한 소비 억제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 통계를 보면 2002~2016년 소비가 추세적으로 감소한 경제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 소비는 47% 정도로 떨어졌는데, 이 추세를 바꾸기 쉽지 않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소비지출 비중은 2002년 55.4%에서 2006년 52.7%로 하락했고,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 50.3%로 더 떨어졌다. 2012년 51.3%로 소폭 상승했지만 다시 하락해 2015년 처음 50% 아래로 내려갔고, 2016년 48.8%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세계 평균 GDP 대비 가계소비지출 비중이 2002년 59.0%에서 2016년 58.3%로 소폭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가계소비지출은 크게 위축된 것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케인즈가 말한 ‘절약의 역설’을 생각하면 가계부채 누적으로 가계가 소비하지 않는 상황을 해소하려면 정부가 나서서 소비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의도대로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을 높이고 이것이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은 생산성이 높은 블루칩 기업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지만 정책 대상은 대부분 경쟁력이 취약한 영세 기업이다. 정책 핵심은 ‘디테일’이다. 정책이 취지와 맞지 않게 작동하면 납세자의 돈이 엉뚱한 곳에 쓰일 수 있다. 누수, 부정 수급을 막고 자금이 필요한 곳에 들어가 정책 효과가 나타나도록 관리해야 한다.”

-최근 기업 설비투자가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설비투자 대부분이 IT 업종에 집중돼 있다.

“세계적인 산업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상황으로 이해해야 한다. 최근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기업을 보면 10곳 중 7곳은 IT 기업이다.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성장한 결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좀 상황이 다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정부는 전체 중소기업 지원 규모를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여러개 부처가 많은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성장하면서 산업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부 지원이 이어지면서 좀비기업이 연명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게 정부의 목표이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문제는 우리 경제 규모가 너무 커져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기가 끝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우리 정부가 국책은행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에 자금을 지원하려고 할 때 일본과 유럽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이런 환경이 정부 주도 구조조정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은 채권단 주도로 유암코 등을 활용해 민간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계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실업보험금을 확대하는 등 지원책을 내놓는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정부가 얘기한 수출주도성장은 양적인 관점이다.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정교한 데이터에 의존해 정부가 정책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범 사례를 만들어 경제 운용 방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중소기업이 어려우니 지원해주자는 식의 정책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미국 채권 금리가 오르는 가운데 한은은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남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세계 경제가 얻은 교훈은 선진국의 통화정책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경제(전반적으로)는 선진국으로 평가되지만 금융시장은 여전히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특이한 지위에 있다. 한은은 경제(성장)보다 외환흐름의 안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할 것이다. 한은이 주목하는 것은 채권 시장 흐름이다. 채권 시장에서 외국인이 자금을 빼기 시작하면 한은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