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압박 수위를 점점 높이면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부회장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삼성은 삼성생명(032830)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지주회사 설립,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등을 추진했으나 모두 무산됐다.

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어떻게 처리할 지다. 삼성생명은 작년 9월말 기준 삼성전자 지분 8.19%(1062만2814주)를 가진 최대주주다. 또 삼성물산(028260)중심으로 형성된 순환출자(A →B→C→A 식의 연결 고리를 통해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 고리를 어떻게 해소할지도 관건이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사옥.

◇ 삼성 지배구조 압박 가하는 정부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달 5일 ‘대기업집단의 자발적 소유지배구조 개선 사례’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 “현대차, SK 등 대기업의 자구노력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삼성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했다.

공정위는 “삼성은 개편안을 발표하지 않아 유보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삼성을 간접적으로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공정위는 반기마다 대기업들의 자체 개편안에 대한 이행 상황을 분석·평가해 공개할 예정이다.

또 금융위원회는 1월 31일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 도입방안’을 발표하고 올해 7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제도는 금융회사의 부실로 비(非)금융회사까지 동반 부실해지는 것을 막고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금융회사에 출자해 대주주와 계열사를 우회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 대상은 삼성, 한화(000880), 교보생명, 미래에셋, 현대차(005380), DB(옛 동부), 롯데 등 금융자산 5조원 이상인 7개 복합금융그룹인데, 재계는 사실상 삼성을 겨냥한 제도로 보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가치가 자본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삼성생명은 자본금을 추가로 대폭 확충하거나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삼성그룹은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중단됐었다”며 “공정위나 금융위의 움직임이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삼성에 큰 그림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하는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순환출자 고리 해소도 숙제…삼성 “상황 지켜보는 중”

삼성이 기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할지도 관심이다. 삼성은 현재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총 7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을 갖고,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삼성화재는 삼성물산을 지분을 가지면서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화재 → 삼성물산’의 고리가 형성돼 있는데, 이런 고리가 총 7개라는 것이다.

상호출자제한기업(대기업)집단에 속하는 주요 기업들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라 2015년 7월 25일부터 신규 순환출자를 할 수 없고 기존의 순환출자 고리를 강화할 수도 없다. 삼성이 가진 7개의 순환출자 고리는 법 시행 전에 형성됐기 때문에 이를 해소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끊임없이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어 방치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명진 삼성전자 부사장은 작년 4월(당시 전무) “순환출자는 여러 계열회사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사항으로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시장 영향을 최소화할 방법과 시점을 고려해 해결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석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정부의 제도가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분간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 등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강제로 매각해야 할 때 삼성전자가 지분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처리 방안은 국회에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라 현재 뭐라고 말할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통합감독제도가 시행되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돼 경영권 행사가 어려워지고 의결권이 제한되는 우려가 있다”며 “삼성전자는 외국인 지분이 많은데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약화되면 엘리엇 사태처럼 외국 주주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