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은행권 채용비리 조사 결과를 두고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이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양측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회장 선임과정 등을 둘러싼 지배구조 문제로 한 차례 기 싸움을 벌인 금융당국과 금융지주사들이 채용비리 문제를 놓고 '2라운드'에 접어든 셈이다.

금감원이 밝힌 채용비리가 사실로 드러나면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을 향한 퇴임 압력이 다시 거세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신년사에서 "채용비리, 우월한 지위를 악용한 갑질 문화 등 생활 속 적폐를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채용비리'를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연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의 성격이 강한 은행들의 채용비리가 사실로 드러나면 CEO 등은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채용비리가 드러날 경우 최고경영자(CEO) 해임을 권고할 수 있다는 입장도 내놨다.

반대로 검찰의 조사 결과, 이들 은행의 채용비리가 입증되지 않을 경우 금융당국 수장에게 역풍이 불 수 있다.

◇ 금감원 "채용비리 사실" vs 국민·하나은행 "채용비리 없다"

지난달 31일 금감원은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을 비롯해 DGB대구은행, BNK부산은행, 광주은행 등 5개 은행에서 채용비리 의심사례 22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총 13건의 특혜 채용을 했다. 지난 2016년에는 사외이사와 관련한 지원자가 필기 전형과 1차 면접에서 최하위권 점수를 받았음에도 채용 공고에선 없었던 '글로벌 우대 전형'으로 통과해 임원 면접 점수 임의 조정으로 최종 합격했다.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위스콘신대 등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의 임원 면접 점수도 올려줘 결과적으로 필기전형과 1차 면접 점수가 높았던 수도권 대학 지원자들이 대거 떨어졌다.

KEB하나은행(왼쪽)과 KB국민은행.

국민은행에선 지난 2015년 신입 행원 채용 과정에서 3건의 특혜 채용이 있었다. 특히 서류 통과 인원을 갑자기 늘려 윤 회장의 종손녀와 전 사외이사의 자녀 등이 합격하고 일부 임직원 면접에서 최상위 점수를 받았던 점 등이 의심 사례로 지목됐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은 정면 반박했다. 국민은행은 "채용과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직원들은 정상적인 기준과 절차에 의해 채용했고 향후 조사 과정에서 성실히 소명하겠다"며 채용 관련 비리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나은행도 "채용비리 사실이 없으며 특혜채용 청탁자도 없다"며 "글로벌 인재는 해외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별도 심사를 진행해 채용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들 은행의 정면 반박에 대해 금감원은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지난 1일 최흥식 금감원장은 "여러 가지 채용비리 상황을 확인해 검찰에 결과를 보냈고 검사 결과가 정확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도 "은행들이 사전에 작성한 (VIP) 리스트를 확인했고 증빙자료를 가지고 (채용비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금융당국, 지주사 회장 다시 정조준하나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금감원 채용비리 조사 결과를 이례적으로 반박하고 나선 것은 채용비리 문제가 지주 회장에 대한 퇴임 압력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반대했던 금융당국이 한차례 체면을 구긴 터라 이들 회장을 정조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앞서 채용비리 논란이 일었던 우리은행의 경우 이광구 전(前) 행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바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왼쪽),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우리은행과 마찬가지로 검찰 수사 단계에서 채용비리 사실 관계가 확인된다면 윤 회장이나 김 회장도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감원장 등 금융당국의 수장들은 일부 금융회사 CEO들이 장기 집권을 위해 경쟁자를 없애고 이른바 '셀프 연임'을 하려한다고 지적해 왔다. 은행계 금융지주회사 처럼 특정 대주주가 없는 금융회사에서 조직을 장악한 CEO가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한 뒤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손쉽게 연임·재연임에 나선다는 것인데, 윤 회장과 김 회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금감원은 지난달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에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 1호' 기업 특혜 대출 의혹 등에 대한 검사를 진행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회장 선임 일정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하나금융 회추위는 금감원의 요구를 거부하고 일정을 강행했고 김 회장은 3연임에 성공했다.

◇ 채용비리 입증이 관건...검찰 결과에 따라 한쪽 치명타 입는다

채용비리 문제는 청년실업과 금수저 등 사회적 문제와 맞물려 있어 폭발력이 강한 이슈다. 그런 만큼 검찰의 조사 결과에 따라 한쪽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금융위는 "채용비리 사실이 드러나면 주주총회에서 해당 임원의 해임을 권고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 입장에서 지주사 CEO들의 셀프 연임이 불편했겠지만, 관치(官治) 논란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채용비리 문제는 사회적인 이슈인데 관치 논란 부담도 없어 금융당국이 강하게 밀고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의 주장과는 달리 채용비리가 입증되지 않을 경우 금융당국 수장들에게 역풍이 불 수 있다. 일각에선 이들 은행이 '채용비리는 없다'고 배수진을 친데는 그만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용비리 문제는 금융당국과 검찰이 이를 어떻게 입증하고 금융사들이 어떻게 방어해 내느냐가 관건"이라며 "조사 결과에 따라 당국이 또 한번 체면을 구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