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액면분할 ‘깜짝’ 발표 효과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주력 사업에 대한 기대감까지 더해져야 주가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는데, 핵심 고객사 애플의 아이폰 판매량 부진 소식이 삼성전자 투자심리를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애플에 아이폰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과 메모리 반도체 등을 공급하고 있다. 양사는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1·2위를 다투는 경쟁 관계이지만, 동시에 아이폰에 탑재되는 주요 부품을 주고 받는 공생 관계이기도 한 셈이다.

조선DB

전문가들은 아이폰 판매 부진이 삼성전자 디스플레이 사업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일부 증권사는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그러나 독보적인 경쟁력과 주주친화정책 등을 고려하면 투자가치는 여전히 높다는 게 증권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 아이폰 판매량 감소…“삼성디스플레이 실적 악화”

2일 유가증권 시장에서 삼성전자(005930)는 전날보다 10만6000원(4.26%) 하락한 238만5000원에 장을 마쳤다. 2거래일 연속 약세다. 외국인과 기관이 나흘째 삼성전자 매물을 쏟아낸 가운데 UBS와 홍콩상하이 등이 매도 창구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유통주식 수를 확대하기 위해 액면가액을 주당 5000원에서 100원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당시 주당 250만원을 웃돌던 주식을 5만원짜리 50개로 나누겠다고 한 것이다. 깜짝 발표 직후 삼성전자 주가는 8% 이상 치솟기도 했다.

특히 황제주가 국민주로 바뀐다는 소식에 개인 투자자들이 열렬히 환호하며 매수에 나섰다. 삼성전자 주가가 액면분할에 따라 5만원대로 내려오면 개인의 거래 비중이 늘어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

하지만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은 상황을 달리 해석하고 삼성전자 순매도에 나섰다. 특히 외국인은 31일 하루에만 삼성전자를 6000억원 이상 순매도했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이뤄진 667건의 액면분할 사례를 근거로 들며 “평균적으로 액면분할 공시를 하면 주가가 상승하지만, 이후 다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여기에 1일(현지시간) 애플이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하자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심리는 한층 더 악화됐다. 애플은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지만, 국내 증시는 아이폰 판매량 감소에 주목했다. 2017년 4분기 아이폰 판매량은 7730만대다. 이는 2016년 4분기보다 1% 줄어든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아이폰 판매량이 감소했음에도 애플이 호실적을 기록한 건 이전 모델보다 50달러 이상 높게 책정된 아이폰8 시리즈와 1000달러짜리 아이폰X 덕분”이라고 전했다.

팀쿡 애플 최고경영자(오른쪽)와 조너선 아이브(왼쪽)가 아이폰X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아이폰에 핵심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이므로 아이폰 판매량이 감소하면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OLED 패널 주요 고객사(애플)의 예상보다 부진한 스마트폰 수요를 반영해 2018년 상반기 삼성전자 디스플레이 부문의 실적 추정치를 크게 낮춘다”고 말했다.

유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 갤럭시 신모델 출시로 일부 회복이 예상되지만, 디스플레이 부문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5조2000억원으로 당초 예상보다 36%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325만원에서 310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현대차투자증권도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340만원에서 330만원으로 낮췄다. 노근창 연구원은 “올해 1분기 아이폰X 생산량이 전분기보다 40.0% 감소한 1800만대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자 자회사)의 실적 하락은 불가피하다”며 “이 같은 추세는 2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국내 증권사보다 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CLSA는 1일 “삼성전자의 주당순이익(EPS)이 올해부터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며 목표주가를 330만원에서 280만원으로 낮췄다.

노무라증권도 “환율 상황이 나쁘고 OLED 실적 전망이 기대에 못 미친다”며 목표주가를 370만원에서 360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JP모건 역시 디스플레이 사업부의 이익 추정치를 기존 대비 28% 내리면서 목표주가도 31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조정했다.

◆ “투자가치는 여전…주주친화정책 강화”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목표주가를 일부 조정하긴 했으나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의견 ‘매수’는 유지했다. 수익성이 조금 악화될 수 있지만 투자가치는 여전히 높다는 것이다.

김록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전사 이익의 74%를 담당하는 반도체 부문은 여전히 견조하다”며 “D램 11라인이 이미지센서로 전환돼 1분기에 일시적인 출하량 감소는 불가피하겠지만, 평택공장 2층에 설비 구축이 완료되는 2분기부터는 출하량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내부 전경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이익의 절대 규모가 크고 주주환원정책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은 투자자 입장에서 매력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액면분할 이슈에 가렸지만, 이번에 삼성전자는 2017년 배당 규모를 잉여현금흐름(FCF)의 50% 수준인 5조8000억원으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는 2016년 배당금(4조원)보다 46% 늘어난 규모이자 당초 계획했던 4조8000억원보다도 1조원 많은 금액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31일 공시를 통해 “2018년 배당을 올해 대비 100% 올리고, 2019~2020년에는 2018년과 같은 규모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예정대로 올해 배당금을 100% 확대할 경우 배당수익률은 3.3%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 연구원은 “공격적인 주주환원정책은 이 회사가 주가 부양 및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액면분할이 궁극적으로는 수급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액면분할이 펀터멘털(기초체력)과는 무관한 이슈지만, 투자자 저변 확대와 유동성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규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도 “액면분할 자체가 회사의 내재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없지만, 삼성전자는 이미 충분히 저평가되고 있다”며 “액면분할을 통해 투자자의 진입장벽을 낮추면 주식 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