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느 정도 예상해서 큰 기대는 안했습니다. 그래도 막상 차기 협회장이 결정되니까 아쉽긴 하네요."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이 이달 25일 서울 여의도 금투센터에서 실시된 '제4대 금융투자협회장 선출' 투표에서 68.1%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차기 협회장에 당선됐습니다. 권 사장은 이달 말 키움증권 CEO(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난 뒤 오는 2월 4일부터 금투협회장 업무를 시작합니다. 임기는 2021년 2월 3일까지 3년입니다.

권 사장 당선이 확정된 후 금투협 회원사로 등록된 주요 자산운용사들의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유력 후보로 거론된 인물이라 투표 전부터 당선을 예상했다", "키움증권을 잘 키워낸 리더인 만큼 기대감이 크다" 등 긍정적인 답변이 쏟아졌습니다.

권용원 4대 금융투자협회장 당선자(왼쪽)와 황영기 현 회장이 1월 25일 투표 결과가 공개된 후 축하인사를 나누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좋은 말을 이어가던 자산운용사 관계자들도 대화 끝무렵에는 "아쉽다"거나 "걱정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물론 기자가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을 먼저 던지긴 했지만, 대부분 순순히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찬밥 신세 3년 더 하게 된거죠 뭐"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자산운용업계는 왜 씁쓸해 하는 것일까요.

이번 선거 기간에 각 후보가 내건 주요 공약에서 힌트를 찾아보겠습니다. 당선자인 권 사장을 비롯해 제4대 금투협회장 선거에 도전장을 낸 사람은 총 4명. 이중 권 사장을 뺀 나머지 3명은 "자산운용업계를 별도 협회로 분리하겠다"거나 "자산운용 부문 부회장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약속의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핵심은 '자산운용업계가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공약이 그냥 나왔을 리 없습니다. 자산운용업계의 오랜 불만이 '협회내 위상'이고, 표가 절실한 후보자들이 앞다퉈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려 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자산운용업계에는 금투협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2009년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길 원하는 이가 제법 많다고 합니다. 자본시장법은 증권거래법,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선물거래법, 신탁업법 등 기존의 자본시장 관련 법률 6개를 통합해 만든 법입니다.

2008년까지는 각각의 법에 따라 업계 입장을 대변하는 협회도 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선물업협회 등으로 세분화돼 있었습니다. 이들 협회는 자본시장법 도입을 계기로 금투협이라는 한 지붕 아래 모이게 됐는데, 자산운용업계의 불만은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서울 여의도 금투센터 전경

현재 금투협의 중심축은 단연 증권사입니다. 특히 협회 분담금 지분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대형 증권사들이 '사실상' 금투협의 모든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많이 낸 회사가 목소리도 큰 겁니다. 협회가 회원사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갑과 을에 가까운 관계입니다. 가령 판매사인 증권사가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펀드매니저 실력과 포트폴리오 구성이 아무리 좋아도 펀드 신상품은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덩치가 큰 운용사도 대부분 증권사와 계열사 관계로 묶여있어 불만을 마음대로 표출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산운용사 입장에선 오직 자신들만을 위해 힘써주던 협회가 그리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증권사와 입장이 다른 이슈가 불거졌을 때 금투협이 자신들 편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을 자산운용업계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권용원 사장은 이번 선거 기간 동안 협회 분리나 자산운용 부문 부회장제 같은 공약을 내걸지 않았습니다.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는 오히려 "지금은 하나의 협회가 힘을 집중해 다른 업권(은행권)의 영역 침범을 막아내야 할 때"라며 협회 분리에 뜻이 없음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조선비즈 2018년 1월 25일자 '[인터뷰] 권용원 신임 금투협회장 "정부 네트워크 자신있어…협회분리 논할 때 아냐"' 기사 참조>

권 사장은 10여년간 키움증권(039490)을 이끌며 이 회사를 '리테일 절대 강자'로 만들었습니다. 걸어온 길도 관료(기술고시 21회), 벤처캐피털(VC) 사장, 정보기술(IT) 업체 대표 등으로 다양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금투협 수장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적어도 이력 면에서는 말입니다.

하지만 개인 역량과는 별개로 회원사 중 누군가는 그의 당선을 '아쉽고 걱정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권용원 차기 금투협회장은 이런 우려를 충분히 보듬고 현명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아무쪼록 곧 임기를 시작하는 권 사장이 241개 금투협 회원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협회장으로서 중심을 잘 잡아주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