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강원 강릉시 구(舊)도심인 명주동 우체국 옆 골목길. 자주색·상아색 꽃양배추 화분으로 장식된 길 양쪽으로 저층 건물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일제시대 지어진 건물이 그대로 있을 정도로 오래된 거리였지만 깨끗했다. 기와는 빛이 났고, 담벼락에는 조선시대 스타일 풍속화나 파란색 고래 그림 등이 그려져 있었다. 흑백영화에 컬러로 덧칠한 느낌이었다. 빛바랜 붉은색 페인트로 '봉봉방앗간'이라고 적힌 곳은 핸드드립 커피를 파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었다. 1940년대부터 방앗간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해 2011년 문을 열었다. 김수인(27)씨는 "서울에서 인터넷 검색으로 이곳을 발견하고 친구와 KTX로 나들이 왔는데, 아늑한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명주동은 원래 고려시대 때부터 1000년 이상 강릉의 도심이었다. 하지만 2001년 강릉시청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공동화(空洞化)가 시작됐다. 시청 직원들이 이용하던 식당·상가가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상권은 침체됐다. 초등학교도 이사를 갔다.
동네를 살린 것은 '역사'였다. 구도심 살리기에 나선 강릉시는 2006년 고려시대 중앙 관리 숙소인 임영관(臨瀛館)을 복원했다. 201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도시재생이 시작됐다. 1958년 세워진 강릉제일교회 건물을 리모델링해 소극장을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 지어진 적산가옥(敵産家屋)은 북카페 등으로 개조했다. 옛 초등학교 건물은 공연장·녹음실·개인 연습실 등을 갖춘 '명주예술마당'으로 바꿨다.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3년 지역 주민 23명이 '작은 정원'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텃밭과 공터에 꽃을 심고, 골목길 곳곳에 화분을 놨다. 이 모임 회장인 마을 토박이 문춘희(72)씨는 "한동안 마을이 침체돼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다시 이곳에서 장사를 하니 활기가 넘쳐 좋다"며 "이들과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햇살박물관'을 만들어 과거 자신들이 사용하던 물품과 마을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 등도 전시하고, '골목투어' 해설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웅석 강릉시 도시재생팀장은 "10여 년간 지역 주민단체가 중심이 되고 시가 지원하면서 강릉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마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