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시장을 대표하는 제약·바이오주에서 대주주의 지분 매각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대주주는 한결같이 ‘채무 상환과 세금 납부’가 목적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숨겨진 악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도 대주주의 행보가 석연치 않다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 신라젠·바이오메드·툴젠 등 대주주의 잇단 지분 매각에 요동치는 주가

코스닥 시총 4위 업체인 바이로메드는 지난 23일 장이 끝난 후 대주주들의 지분 매각 사실을 공시했다. 최대주주인 김선영 연구개발 총괄이사가 지난 18, 19일에 총 8만6706주(0.54%)를, 김용수 대표이사가 18일 2만1677주(0.14%)를 매도하면서 각각 보유 지분은 10.25%, 2.76%로 내려갔다. 각 일자별 종가를 적용하면 두 사람은 총 259억원에서 273억원의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앞서 문은상 신라젠 대표 등 최대주주는 지난 4일 문 대표와 지인, 친인척 9명이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올해 1월 3일까지 271만3997주를 장내 매도했다는 사실을 공시해 투자자들을 패닉 상태에 빠뜨렸다. 문 대표의 보유 지분율은 20.52%에서 16.53%로 3.99%포인트 감소했다. 이들 대주주는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이달 3일까지 7거래일에 걸쳐 4% 규모의 지분을 조금씩 분할 매각했다. 문 대표가 이번 매각으로 확보한 현금은 1300억원에 달한다.

코넥스 기업 툴젠의 김종문 대표도 지난 19일 보유 지분의 1.57%(8만5000주)를 매도한 사실이 알려졌다.

제약·바이오주의 대주주 지분 매도 소식으로 투자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장기간의 R&D(연구개발)를 거쳐 특허 출원과 시판에 이르기까지 긴 기간 성과가 가시화되기 어려운 제약·바이오주의 특성 탓에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대주주 지분 매각 사실이 공시된 직후 이들 종목의 주가는 크게 요동쳤다. 신라젠은 공시가 있었던 4일 10% 가까이 하락했고 툴젠 역시 9.14% 하락했다.

이례적으로 바이로메드 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최대주주 지분 매각 공시가 있던 날에도 바이로메드는 15.49% 상승한 28만400원에 장을 마쳤다. NH투자증권이 미국 3상이 진행 중인 바이로메드의 유전자치료제 VM-202의 파이프라인의 가치가 10조2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호재성 소식을 전하면서 시장의 동요를 잠재운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년간 바이로메드 주가 추이

◆ 회사 측 “빚 갚고 세금내려 팔았다”...소액주주 는 “꼭 지분 팔아야 했나?” 의심

신라젠과 바이로메드는 지분 매각의 이유를 ‘채무 상환과 세금 납부’라고 설명했다.

바이로메드는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김선영 이사는 2016년 3월 제3자 배정과 2016년 10월의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260억원의 대출을 받았고 연간 7억원 이상의 이자를 납부하느라 상당한 자금 압박을 받았다”며 “김 이사 1년 소득의 몇 배에 이르는 규모로, 이를 해소하기 위해 부득이 주식을 매도했고 매도금은 이미 전액 대출금 상환에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앞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금을 주식으로 내려 했으나 국가가 거부했고, 대출도 한도가 있어서 세금을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며 “미실현 소득에 1000억원대의 세금을 부과한 상황에서 (지분 매도는) 거액의 탈세자가 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회사측의 해명에 투자자들은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최근 제약·바이오주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대주주들이 그동안 묵혀뒀던 채무를 상환하기에 적기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업종 성격 상 이익 실현이 금방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대규모 채무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히 컸을 것이고 시장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현금화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을 석연치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에서 대주주의 지분 매각은 ‘당분간 대주주가 알고 있는 호재가 없다’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에게는 5%의 지분변동이 있을 시 이를 공시하도록 하는 ‘5%’룰 외에도 거래소 상장규정을 통해 대주주의 지분변동이 있는 경우 즉시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는 5%룰만 적용받고 있어 대주주의 지분 변동에 대한 정보를 적시에 투자자들이 접하기 어렵다. 한국거래소도 이들 상장사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구심을 거두지 않는 투자자들은 대주주들이 지분 매각 외에 다른 현금 조달 방안이 없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기업 가치가 향후 크게 상승할 것이라 인식하고 있다면 지분 매각보다는 이를 담보로 자금을 마련하는 방도를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바이오주가 폭등하면서 해당 회사들의 대주주가 지분을 판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이들이 꼭 주식을 팔아야만 하는 상황인지 의심스럽다”며 “회사의 향후 가치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본다면 지분 매각 외의 다른 자금 조달 방식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바이로메드 관계자는 “대표들은 그동안 보유한 주식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는데, 금리 인상 시점이 도래하면서 상환을 위해 주식을 매도했다”며 “최대주주의 지분 매각은 일반적으로 회사의 미래에 대해 의심하는 신호로 볼 수 있겠지만, 바이로메드 경영진들의 매도 사유가 수익 실현이 아니라 자금 압박 해소였기 때문에 시장에서 이들을 이해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라젠 관계자는 “현재 최대주주 지분 매각에 대해서 특별하게 밝힐 만한 입장은 없다”며 “지난번 공지에 설명한 내용이 회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